더피알=김경탁 기자|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땅장사’ 사업구조 개선을 요구받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근본적인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LH의 사업은 택지를 매각해 자금을 조달하고, 수도권 개발이익으로 지방 적자 사업을 메우는 이른바 ‘교차보전 체계’에 의존해왔다. 이 방식은 공공임대와 지역 균형발전에 일정한 성과를 냈지만, 재무 부담은 점점 커져갔다.
정부와 LH가 잇달아 내놓는 새로운 전략들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전제로 한다. 지방 미분양 매입 확대, 직주락 도시 실험, 개혁위원회 출범이 동시에 추진되는 배경에는, 더 이상 기존의 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지방 미분양 매입, 주거복지와 지역 경기 두 마리 토끼
첫 번째 변화는 주거복지 분야에서 시작됐다. LH는 올해 초 처음으로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매입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심사 과정에서 목표 물량을 채우지 못해 비판이 따랐다. LH는 공실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해 수요가 있는 주택만 신중히 매입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공급 규모는 기대에 못 미쳤다.
이에 국토부와 LH는 8월 말, 2차 확대 방안을 내놨다. 매입 물량은 기존 3천 호에서 8천 호로 늘리고, 매입 상한가도 감정평가액의 83%에서 90%로 상향했다
이렇게 확보한 주택은 ‘분양전환형 든든전세’로 공급된다. 입주자는 시세의 90% 수준으로 전세를 얻고 최대 6년+2년 거주가 가능하며, 원한다면 저렴하게 분양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
LH 관계자는 “공실 위험을 막기 위해 수요 있는 주택 위주로 매입하다 보니 1차에서는 목표 물량이 부족했다”며 “이번에는 상한가 상향으로 우량 주택 확보를 유도하고, 9월 1일 2차 공고가 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정책 목표는 분명하다. 건설사에는 유동성 공급, 청년·신혼부부 등 주거취약층에는 안정적 거주 기회를 제공해 지역 경기와 복지를 동시에 잡겠다는 것이다.
직주락 신도시,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시작된 실험
두 번째 변화는 도시 전략에서 나타난다. 최근 LH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연계해 ‘직주락(職·住·樂) 도시 모델’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히 주택을 공급하는 차원을 넘어, 주거·일자리·여가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도시 설계를 지향한다.
1기 신도시의 한계를 반영한 정책화 작업으로, 반도체 팹 건설 단계별 인구 유입과 직군 특성을 반영해 맞춤형 주거를 공급하고, 학원가·먹거리·문화시설·앵커 시설을 도시에 배치해 주말과 야간에도 활력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이다.
LH 관계자는 “직주락 도시는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시도”라며, 최근 연구용역을 발주해 구체적 방향을 정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는 곧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상징한다. LH가 더 이상 집만 짓는 개발자가 아니라, 사람의 생활 패턴에 맞는 ‘삶의 플랫폼’을 기획하는 주체로 나서려는 시도다.

“땅 장사 그만” LH 개혁위원회 출범
세 번째 변화는 조직과 제도 차원에서 진행된다. 정부는 “LH를 더 이상 땅 장사 기관으로 두지 않겠다”며 연내에 택지 매각 중심 사업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8월 28일 출범한 LH 개혁위원회는 9명의 민간위원으로 구성됐다. 위원회는 △사업 개편 △기능 재정립 △재무·경영 혁신을 주요 의제로 다룬다. 특히 토지·주택 개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발이익을 공공이 환수하는 방안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국토부 1차관과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모두 주택 공공성과 개발이익 환원 문제를 꾸준히 연구해온 인사들이다.
이날 출범식에서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공공주택 사업구조와 방식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주거 안정 방안을 찾아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LH 자산은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공적 자산”이라며 제도 혁신과 재무·경영 건전성 확보, 건설 현장 안전 강화를 함께 강조했다.
개혁 대상이 된 LH는 다음 주쯤 내부 인사와 조직 개편을 통해 ‘LH개혁추진단’을 꾸릴 예정이다.
한편 이 같은 근본적 변화의 배경에는 교차보전 체계의 종언이 있다.
LH는 그동안 수도권 개발에서 얻은 이익을 지방 사업과 임대주택에 투입해왔다. 이는 공공성 확보에 기여했지만, 분양가 규제와 공사비 상승으로 개발이익은 줄고 적자만 쌓였다.
2024년에 발표된 ‘LH 개발이익의 발생구조와 교차보전 체계의 성과와 한계’라는 자체 연구보고서도 “교차보전만으로는 재무 안정성을 지킬 수 없다”고 지적하며, 기능 재정립과 재무 혁신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정부가 내세운 “땅 장사 그만”이라는 개혁 구호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반영한 결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