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박주범 기자|서울의 평균 아파트값이 10억 원대 중반까지 치솟고, 각종 대출 규제와 여전히 높은 금융 부담은 내 집 마련의 꿈을 더 멀어지게 만든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을 고르는 일보다 ‘옮겨 다니며 버티는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물리적으로는 좁고 비싸졌고, 감정적으로는 불안해진 집, 소유하기도, 편안하게 머물기도 어려워진 시대에 해외 브랜드들도 주거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집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지난 9월 미국의 레가시 커피 브랜드 맥스웰 하우스(Maxwell House)는 2025년 한시적으로 브랜드명을 <맥스웰 아파트(Maxwell Apartment)>로 바꾼 캠페인을 전개했다. 133년 된 브랜드가 이름을 변경한 이유는 미국 내 주거비와 임대료 상승이라는 현실을 직접 반영하기 위해서였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 자료에 따르면, 2024년 첫 주택 구매자 시장 점유율은 사상 최저치(24%)를 기록했고, 주택 구매자 연령은 역대 최고치(56세)를 경신했다. 2025년에는 미국인의 약 1/3이 주택 구매 대신 임대를 선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브랜드에 집(House)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지만 많은 이들이 더 이상 집을 살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광고대행사 리씽크(Rethink)의 파트너이자 그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재커리 바우티스타(Zachary Bautista)는 맥스웰 아파트먼트 캠페인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좋은 커피가 반드시 비싼 가격표와 함께할 필요는 없다”는 그의 말처럼, 미국에서 아파트란 대체로 월세 생활의 상징이다.
캠페인의 슬로건, “집을 살 수 없다면 맥스웰 아파트로 오세요(If you can’t buy a house, welcome to Maxwell Apartment)”는 커피를 현실 속의 작은 여유로 제시하며, 주거비 부담에 지친 세대에게 현실 공감형 위로를 제공한다. 전국적으로 커피를 좋아하는 ‘임차인’들이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해, 그들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9월 29일 ‘전국 커피의 날’에는 소비자들이 맥스웰 아파트 커피를 12개월 ‘임대’할 수 있는 이벤트도 열렸다. 공식 임대 계약서에 서명하면 40달러 미만의 가격으로 1년 치 커피를 팬트리에 채울 수 있었다. 이러한 이벤트는 집값 급등으로 인한 젊은 층의 주거 형태 변화를 정확히 포착하고, 집이 더 이상 인생의 기본 단위가 아니게 된 세대에 대한 응답이다.
‘자가 김부장’이 개인의 정체성이 되는 시대일지라도, 정작 중요한 것은 ‘집을 가지는가’가 아니라 ‘집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물음이다.
비용 상승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계속 같은 집에 머물 수 없거나 바꿔야 한다는 현실은 브랜드가 고려해야 할 더 중요한 맥락이 될 수 있다.
스웨덴 가구 브랜드 이케아(Ikea)는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삶의 모든 사소한 사건들을 통해 집의 정서적 의미를 강조한다.
이케아의 글로벌 조사〈집에서의 생활 보고서(Life at Home Report)(2023)에 따르면, 전 세계 39개국의 성인 약 3만8천여 명 중 10명 중 6명가량이 ‘집에서의 생활에 만족한다’고 답했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집이 완전히 편안한 공간은 아니라고 느꼈다. 이케아는 이 간극을 제품 대신 공감으로 메운다.
새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삶이 어디로 가든(Wherever Life Goes)>에서 이케아는 “삶이 어디로 가든, 우리가 그 곁에 있다”고 말한다. 특징적인 것은 제품 대신 가격표가 스토리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이사, 연애, 가족의 탄생, 취미의 시작 같은 순간마다
이케아가 함께 움직인다.

두 연인이 키스를 나누는 장면에는 ‘더블 침대 3,795 크로나,
쌍둥이 초음파 사진에는 ‘코너 범퍼 49 크로나',
아이의 바이올린 연습 장면에는 ‘차음 스크린 995 크로나’가 등장한다.
제품 대신 부각되는 숫자는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가격표가 저렴함의 표시가 아니라 삶의 전환점을 알리는 신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아케스탐 홀스트 노아(Akestam Holst NoA)의 아트 디렉터 미할 시트키에비츠(Michal Sitkiewicz)는 이렇게 설명한다.
“가격표처럼 단순한 요소를 스토리의 중심에 두면 변화의 순간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키스는 그저 키스일 뿐이지만, 집이 변화해야 함을 예고하는 관계의 시작일 수도 있다.”
이케아의 이번 캠페인은 2016년 <삶이 일어나는 곳(Where Life Happens)>에서 출발한 정서적 연장선 위에 있다. 당시 광고는 이혼한 부모 사이에서 양육되는 아이의 시선을 통해 “완벽하지 않은 집에도 따뜻함은 있다”고 말했었다. 2025년의 ‘삶이 어디로 가든’ 캠페인은 그 철학을 더 미니멀한 언어로 압축한다.

이케아가 보여주는 집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삶은 계속된다. 집은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삶의 흐름에 맞춰 변화하는 유기체라는 메시지다.
맥스웰은 경제적 현실에서 멀어진 집을 유머로 견디게 하고, 이케아는 감정적 집을 공감으로 복원한다. 두 브랜드는 서로 다른 접근을 통해 ‘집’을 관계의 장소로 재정의한다. 이는 주거 위기와 심리적 불안 속에서 브랜드가 사회적 감수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집은 여전히 인간의 핵심 욕망이지만, 브랜드들은 더 중요한 것은 집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한다.
결국 어떤 집을 사느냐보다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다. 삶이 무거워도, 우리는 여전히 작은 선택으로 의미를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