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한국에 티셔츠 팔러 온다는 '팔란티어'

[브리핑 지] 팬덤 굿즈로 소비자 접점 넓히는 B2B 기업들

팔란티어, 스페이스X 등 일반 소비자 대상 아님에도 팬층 두터워
소속감과 정체성 위해 구매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추구한다

  • 기사입력 2025.09.24 16:18
  • 최종수정 2025.09.24 16:23
  • 기자명 박주범 기자

더피알=박주범 기자|미국의 빅데이터 프로세싱 기업인 팔란티어(Palantir)가 다음달 성수동에서 팝업 이벤트를 열고 머천다이즈 판매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져 눈길을 끌고 있다.

미 이민 및 관세집행국(ICE)이 신원 확인과 체포에 사용하거나 군대의 드론 공격 조직이나 기업의 공급망 관리에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등을 판매하는 기업이 대중을 대상으로 후드티 같은 굿즈 판매 이벤트를 연다는 것에 의아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서방을 지킨다는 미션을 가진 팔란티어 굿즈의 핵심은 미국산이라는 것이다. (사진 = X@PalantirTech)
서방을 지킨다는 미션을 가진 팔란티어 굿즈의 핵심은 미국산이라는 것이다. (사진 = X@PalantirTech)

팔란티어가 일반 소비자 대상 굿즈를 출시하며 브랜드를 단순한 기술기업에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확장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테크 전문 매체 와이어드(Wired)의 지난 22일 보도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작년에 팔란티어는 온라인 스토어를 다시 시작했고, 최근 세련된 인터페이스와 새 결제 시스템을 갖춘 웹사이트도 선보였다.

엉덩이 부분에 ‘PLTR—TECH’라고 쓰인 운동용 반바지(99달러), '인체공학적' 나일론 토트백(119달러)과 야구 모자(55달러) 등을 구매할 수 있다.  팔란티어는 굿즈 판매는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과 팬덤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구매하는 제품을 판매한다.

경영학 교수 스테파니아 사비올로(Stefania Saviolo)와 브랜드 컨설턴트 안토니오 마라차(Antonio Marazza)가 공동 집필한 저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Lifestyle Brand)]에 따르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의 성공은 제품이 우수해서가 아니라, ‘독창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사회적 맥락에 영향을 미치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판매하는 제품을 사용하는 것은 상징적인 행위로 지위를 알리거나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들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가 되고자 노력한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과 공감을 이루는 세계관, 정체성, 가치관을 판매해 고객과의 정서적, 문화적 연결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형성된 공동체에서 고객은 단지 구매자가 아니라 소속된 참여자다.

전통적인 브랜드는 더 저렴하거나 효율적인 대안에 의해 대체될 수 있지만 개인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대체되기 어렵다. 일관된 스토리텔링, 시각적 미학, 소비자가 이상적인 자아를 투영할 수 있도록 하는 메시지를 통해 성장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는 고객이 소비를 자기 표현으로 전환하도록 돕기 때문이다.

나이키, 애플, 파타고니아 등은 대표적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다. 

와이어드는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팔란티어 같은 B2B 기업은 적합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후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11만 명에 달하는 서브레딧 등 온라인에서 팔란티어는 큰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그들은 주가가 오르면 마치 응원하는 미식축구 팀이 터치다운을 기록한 것처럼 기뻐하고, 큰 계약을 따내면 새로운 스타 선수를 영입한 것처럼 축하한다. 회사의 굿즈를 사는 것은 마치 유니폼을 사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스페이스X 스토어의 메인 화면에서 우주 산업의 웅장함이 느껴진다. (사진 = shop.spacex.com)
스페이스X 스토어의 메인 화면에서 우주 산업의 웅장함이 느껴진다. (사진 = shop.spacex.com)

B2B 기업이 소비자 시장에 굿즈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팔란티어뿐이 아니다.

우주 산업을 대표하는 스페이스X(SpaceX) 역시 정부와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하지만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굿즈 전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발사 장면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고 소셜미디어를 통한 참여를 독려하면서 팬덤을 쌓아온 스페이스X는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며 충성도 높은 지지층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해 왔다.

비즈니스 및 경제 전문 매체 하이벨(Hivelr.com)은 “머천다이즈 판매와 대중 참여 이벤트가 유대감을 공고히 한다”고 작년 10월 13일 기사에서 분석했다. 우주 열광자, 기술 추종자, 브랜드 지지자들은 열정적 커뮤니티를 구성해 스페이스X의 혁신적인 정신, 대담한 비전, 현상 유지에 도전하는 끊임없는 추진력에 충성심을 보인다.

스페이스X는 우주 여행에 혁명을 일으키고 삶을 다행성화한다는 야심 찬 미션을 중심으로 하는 스토리텔링 전략으로 경쟁사와 차별화하고, 대중과의 접점을 형성하기 위한 의도적 전략으로 상품 판매를 홍보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티셔츠, 모자, 로켓 모델 등은 ‘인류의 우주 탐사’라는 비전을 소비자가 일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5년 전 게시된 로봇 '스팟' 런칭 영상은 1,350만 이상 조회되었다. (youtube@bostondynamics)

군과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로봇을 공급하는 보스턴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도 유튜브에 공개된 로봇 ‘스팟(Spot)’ 영상으로 세계적 팬덤을 확보했다. 회사는 이를 활용해 티셔츠, 피규어, 액세서리 등 굿즈를 판매하며 기술기업 이미지를 넘어 대중 문화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나사(NASA)의 로고 굿즈도 스트리트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고, IBM은 레트로 로고 티셔츠와 스티커를 통해 개발자 커뮤니티의 팬덤을 강화했다. 깃허브(GitHub)와 레드햇(Red Hat)은 컨퍼런스용 굿즈를 마스코트 IP로 확장하며 개발자 팬층과의 결속을 다졌다.  방위산업 스타트업 안두릴(Anduril) 또한 직원과 협력사를 위한 티셔츠와 모자에서 출발해, 점차 대외적 브랜드 아이덴티티 확산 수단으로 굿즈를 활용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세계 최대 플랫폼인 깃허브사이트에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사진 = thegithubshop.com)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세계 최대 플랫폼인 깃허브사이트에서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사진 = thegithubshop.com)

브랜드와 팬덤을 잇는 굿즈는 B2B 기업의 새로운 브랜딩 전략으로 활용되어 고객이 아닌 팬덤에게 소속감을 제공하고, 내부 결속과 인재 유치 효과를 높이며, 브랜드를 대중 문화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팔란티어의 성수동 팝업은 이러한 전략이 본격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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