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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카레, 폭스바겐 소시지…본업보다 뜨거운 '공장 식당의 비밀'

[브리핑 지+] 부품번호 달린 소시지, 자동차 로고의 카레…기업의 맛있는 변신

공장 식당에서 시작된 혁신, 제조업체들의 '맛있는 브랜딩' 전략
자동차 만들던 회사, 이젠 음식이 대박…폭스바겐 소시지 850만개 판매

  • 기사입력 2025.11.13 10:37
  • 기자명 박주범 기자

더피알=박주범 기자|기술 중심 제조업체들이 본업과 무관한 부차적 실험을 통해  브랜드 본질을 새롭게 구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자동차 회사들이 직원 복지용으로 시작한 음식이 상업적 성공을 거두며 감성적·문화적 브랜드 자산으로 진화하는 새로운 패턴이 주목받고 있다.

교토통신은 지난 달 29일 스즈키 자동차가 본사 하마마츠 공장 식당에서 인도인 직원들을 위해 제공하던 카레를 상용화한  내용을 보도했다. 인도 출신 엔지니어 약 200명을 고용하고 있는 스즈키는 작년 1월 이들의 향수를 달래주기 위해 구내식당 메뉴에 인도식 채식 카레를 도입했다.

그동안 카페테리아에서 제공되던 일본식 카레와 차별화되는 진정한 인도의 맛을 선보이기 위해 수개월에 걸친 시식 테스트를 거쳤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복지 정책으로 시작했지만, 향신료와 채식의 신선한 조화에 일본인 직원들까지 줄을 섰다. 

스즈키는 자동차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력하게 내세운 패키지에 네가지 맛 인도식 카레를 담았다 (사진 = Suzuki)
스즈키는 자동차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력하게 내세운 패키지에 네가지 맛 인도식 카레를 담았다 (사진 = Suzuki)

스즈키는 이 반응을 놓치지 않고 인근의 150년 전통 식당 토리젠(Torizen)과 협업에 나섰다.  ‘스즈키 카페테리아 인도 채식 카레’를 즉석식품화해 지난 6월 정식 출시한 결과 3개월 만에 10만 봉지 판매를 돌파했다. 제품의 가격은 918엔(약 8,800원)으로 일본의 일반 레토르트 제품보다 높지만 정통 인도풍 채식이라는 희소성과 스즈키의 실험정신이란 서사가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했다.

초기 라인업에는 무 무침 삼바, 토마토 렌틸 카레, 병아리콩 마살라, 뭉달 그린 카레 등 네 가지 종류가 포함됐으며, 곧 14가지 맛을 추가 출시할 계획이다.

자동차 브랜드의 정체성이 녹아있는 패키지에는 스즈키의 대표 모델 하야부사, 짐니, 스위프트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자동차는 이동을, 카레는 감정을 움직인다’는 아이디어로 스즈키는 온라인 유통을 통해 카레를 새로운 감성 접점 상품으로 활용하고 있다. 카레 사업이 제품 기술을 넘어 감성의 기술로 브랜드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회사가 식품을 팔아 화제를 모은 것은 스즈키만이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폭스바겐의 재정난은 독일 경제 침체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런데 자동차 판매 부진 속에서 자동차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커리부어스트(Currywurst) 소시지 판매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폭스바겐 순정 부품´으로 판매되는 커리부어스트 소시지, 자동차보다 많이 팔린 해도 있을 정도로 인기 상품이다 (사진 = media.vw.com) 
´폭스바겐 순정 부품´으로 판매되는 커리부어스트 소시지, 자동차보다 많이 팔린 해도 있을 정도로 인기 상품이다 (사진 = media.vw.com) 

르몽드가 지난 3월 14일 ‘노동자 협의회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커리부어스트 소시지가 2024년 폭스바겐의 가장 많이 팔린 제품으로 기록됐다. 구조조정을 위해 전국적으로 3만 5천 개의 일자리를 감축하고 연간 순이익이 30% 감소했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폭스바겐은 자체 생산 커리부어스트의 판매 신기록을 세웠다. 폭스바겐 대변인은 지난해 자동차 판매량은 약 900만 대, 커리부어스트 판매는 약 850만 개에 달했다고 밝혔으며, 이는 2023년 대비 20만 개 증가한 수치다.  

노동자들의 최애 간식으로 30개 공장 식당, 작업장 키오스크, 인근 슈퍼마켓, 혹은 축구경기장 등에서 판매되며 공식적으로 폭스바겐의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이 된 커리부어스트는 1973년 볼프스부르크 공장 식당에서 처음 생산됐다. 노동자 복지용 메뉴로 시작했지만 맛이 입소문을 타면서 외부 판매로 이어졌다. 정육부 부품 번호 '199 398 500 A'가 부여된 폭스바겐 순정 부품(Volkswagen Originalteil)이다. 

지난 3월 11일 가디언은 관련보도에서 커리부어스트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 노동자의 자부심, 공장 공동체의 상징이라고 분석했다. 2021년 폭스바겐이 본사 구내식당 메뉴에서 커리부어스트를 제외하려 하자 노동자 반발이 거세졌고, 전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커리부어스트는 숙련된 노동자의 파워바”라며 복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폭스바겐은 최근 전자레인지 조리용 버전으로 재출시해 식품 사업을 한 단계 확장 중이다. 

폭스바겐의 본업은 여전히 자동차 제조다. 소시지 사업은 어디까지나 브랜드 문화의 일부로 기능한다. 그럼에도 이 제품은 독일 내에서 폭스바겐의 또 다른 얼굴로 자리 잡았다. 경제적으로는 미미하지만, 상징적 영향은 크다. 르몽드는 “커리부어스트는 폭스바겐이 기술기업을 넘어 사회적 브랜드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고 분석한다. 일상의 신뢰 자산으로 재인식되며, 산업브랜드에서 공동체 감성의 브랜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려진 대로 프랑스 타이어 제조사 미쉐린이 발간하는 미쉐린 가이드도 자동차업계와 식품을 연결하는 대표적 사례다.

미쉐린 별 세 개를 받았다면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자동차) 여행을 떠나야 한다 (사진 = guide.michelin.com)
미쉐린 별 세 개를 받았다면 그곳을 방문하기 위해 (자동차) 여행을 떠나야 한다 (사진 = guide.michelin.com)

이것은 본래 타이어 사용 촉진을 위한 무료 여행 안내서로 아직 자동차가 귀족들의 취미였던 1900년대 초 처음 배포됐다. 미쉐린 형제가 운전자가 더 멀리 여행해야 타이어가 빨리 닳는다는 점에 착안해 발간한 이 책자는 운전 문화를 넓히기 위한 ‘마케팅 도구’였다.

그런데 이 가이드가 곧 미식 평가도구로 변모했다. 1926년 별점 제도를 도입한 이후, 미쉐린 스타는 전 세계 요식업계의 품질 척도가 되었다.

타이어라는 물리적 이동수단이 여행의 경험 가치로 확장되며, 오늘날 ‘미쉐린 스타’는 타이어보다 훨씬 강력한 문화적 자산이 되었다.  타이어 브랜드가 미식의 언어로 전환된 이 사례는 제품 중심 브랜드가 경험 중심 브랜드로 변모한 대표적 전환으로 꼽힌다.

이제 소비자는 제품보다 ‘이야기’를 소비한다. 자동차 회사가 만든 카레와 소시지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지 의외의 조합이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 인간적인 브랜드 스토리가 있기 때문이다. 스즈키 카레를 사는 일본인 소비자는 인도인 엔지니어의 향수를, 폭스바겐 소시지를 사는 독일인은 국가의 산업 문화의 자부심을 함께 느낀다. 

기술력이 중심이 되는 회사들이 글로벌 인력을 위한 복지, 노동자 식당, 운전자 서비스라는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서사를 통해 사회와 맺는 관계의 폭을 확장하며 자산가치를 높이고 있다.

폭스바겐의 오리지널 카레 소시지가 판매되는 카레 버스, 볼프스부르크 쿤스트뮤지엄 (사진 = 르몽드 보도) 
폭스바겐의 오리지널 카레 소시지가 판매되는 카레 버스, 볼프스부르크 쿤스트뮤지엄 (사진 = 르몽드 보도) 

전통적으로 기업은 핵심 역량을 유지하며 리스크를 분산하는 방향으로 다각화를 시도해 왔으나 오늘날의 브랜드는 기술이나 제품뿐 아니라 이야기, 철학, 공감을 중심으로 진화한다.

스즈키 카레, 폭스바겐 소시지, 미쉐린 스타 등은 모두 산업적 합리성이 아니라 문화적 감각으로 성공했다. 인간의 감각을 이해하는 능력이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기술은 복제되지만 감각은 복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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