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그냥” 쉬는 거 아닙니다…위기의 청년 정신건강 현주소

빨간불 사회의 블루 청년 (1) 비교·현타·고립감…구직자도 취업자도 ‘불행’

청년 우울증, 2018년 대비 2배 증가…타 세대 비해 급증
20대에 찾아오는 제2의 사춘기 ‘이십춘기’ 신조어도 등장
개인이 해결 못할 시대적 배경, 핑계라고 비난보다 위로를

  • 기사입력 2024.09.12 14:30
  • 최종수정 2024.10.07 13:54
  • 기자명 김민지 기자

[편집자주] 최근 ‘그냥 쉬었다’는 청년 수가 또 한 번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사회적 관심사로 주목 받았지요. 온라인에서는 근로 의욕을 잃고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고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를 출범하는 등 손발을 걷어붙였다고 합니다. 더피알은 기획연재 ‘빨간불 사회의 블루 청년’을 통해 청년 정신건강 위기의 주요 원인을 분석하고 정부와 민간의 협력 방안, 기업체들의 대응 전략을 소개합니다.

더피알=김민지 기자 | 대한민국 청년 정신건강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청년층의 심리적 어려움이 심화되고 이 점이 구직활동 중단의 요인으로도 꼽히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쉬었다’는 청년층(15~29세)은 지난해부터 계속해서 증가세를 보였는데, 7월에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4만2000명이 늘어난 44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특히 쉬는 청년 중 75.6%는 일하기를 원했냐는 질문에 ‘아니다’고 답했다. 휴식자 4명 중 3명은 구직 의사가 없었다는 뜻이다.

구직을 포기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으나,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청년들 사이에서 등장한 '이십춘기'라는 신조어다. 20대 중후반(26~29세)에 찾아오는 ‘제2의 사춘기’를 뜻하는데, 진로 결정과 취업으로 불안을 겪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으며 오는 방황과 우울함의 상태를 말한다.

정신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청년층은 해를 거듭할수록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의료통계정보에 따르면 우울증(질병코드 F32, F33)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18년 약 76만명에서 2023년 106만명으로 38% 가량 증가했는데, 20~29세에 해당하는 환자는 약 99%로 2배 가량 늘며 큰 증가폭을 보였다.

청년 세대의 의욕 저하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공론이 된 지금, 이들이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지 자세히 들어봤다.

구직자도 취직자도 불행한 시대

청년층의 불안과 방황은 크게 취업 준비생과 현재 구직해 일을 하고 있는 취직자의 상태로 나눠볼 수 있다.

타 업종으로 취직하고자 서울에서 4년 넘게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수험생 A씨(28)는 “주변 또래들은 나름 진로를 찾아 일하고 있는데 나는 이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는 상황과 나홀로라는 소외감에 힘들다”며 “간혹 스터디로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는 경우도 있는데 그들이 시험에 붙으면 대화 주제가 달라지면서 관계가 소원해진다”고 말했다.

몇 년의 취업 준비 끝에 최근 구직에 성공한 경북 소재 직장인 B씨(27)는 “전공 공부에서 취직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막상 입사하니 이 일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며 현타가 왔다”고 말했다. B씨는 “돈을 벌어야 할 나이가 됐기도 하고 ‘그냥 해왔으니 해야지’라는 마인드로 하고 있는데 이 업으로 평생 살지는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스텝을 고민해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서울 거주 2년차 직장인 C씨(27)도 최근 번아웃을 겪고 있다. “어릴 때부터 경쟁 사회 속에서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남들 눈치를 보며 챗바퀴 돌아가듯 일하고 급여도 마땅치 않은 삶을 마주하자 내가 정말 바라는 삶인지 의문이 들고 우울해진다”는 것이다.

C씨는 “오래 쉬고 싶은데 이직 시 공백기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아 제대로 쉬지도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일을 해도, 안 해도 불행하다는 밈도 온라인 상에서 떠돌고 있다.
일을 해도, 안 해도 불행하다는 밈도 온라인 상에서 떠돌고 있다.

청년들의 부정적인 감정은 온라인 상에서도 쉽게 드러난다. ‘이백충’, ‘삼백충’(월수입 200, 300만원)이라는 비하 용어가 쓰이는가 하면, ‘나만 그래?’라는 주제로 돈벌이·사회생활·인간관계 등 각종 고민이 담긴 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행복한 근황들이 주로 공유되는 소셜미디어(SNS)에도 어느덧 젊은 층의 울분이 담긴 콘텐츠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청년의 현실적인 고민을 소재로 인스타툰(인스타그램+웹툰)을 연재하는 작가 오솔은 ‘인생 최악 시기 26세~29세’라는 주제로 콘텐츠를 발간하며 청년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몇몇 게시글은 인플루언서들을 통해 다른 SNS 채널로도 공유되면서 ‘이십춘기’ 용어를 더 전파하기도 했다.

작가 오솔은 인스타그램에서 청년들이 현실적으로 하는 고민을 소재로 콘텐츠를 발간하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오솔스월드 갈무리
작가 오솔은 인스타그램에서 청년들이 현실적으로 하는 고민을 소재로 콘텐츠를 발간하고 있다. 사진=인스타그램 오솔스월드 갈무리

진로 결정에 있어서는 인생 전반에 걸쳐 고민해야 할 문제를 취업 직전에 이르러 고민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지적했다. 취업 이후에도 소위 ‘현타’가 계속되는 것도 이 문제에서 시작됐다.

오솔 작가는 “대학 전공 선택 시 흥미나 적성보다는 ‘미래 전망이 좋은 학과’ 혹은 ‘대학 간판을 높일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며 “나 또한 졸업은 다가오고 취업은 해야 하는데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진로를 결정해도 취업의 문턱을 넘어서는 일은 쉽지 않다.

그는 “취업 자체가 꼭 어려운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일자리는 많다. 하지만 연봉, 복지, 대우, 그리고 사회적 인식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가 현재 너무 크다는 걸 취업 준비생들이 익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에서 경력을 쌓고 대기업으로 이직하라는 어른들의 이야기도 청년들 입장에서는 더이상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기업규모별로 전체 일자리 이동자(415만9000명) 중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동한 비중은 12.0%에 불과한 반면, 중소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동한 사람은 81.9%에 달했다.

중소기업 이직자 10명 중 8명은 중소기업으로, 1명은 대기업으로 이직한 것이다. 대기업 이직자의 38.1%는 대기업으로 이동했다. 즉 대기업 출신이 대기업으로 이동하기 훨씬 쉽다는 얘기로 풀이된다.

오솔 작가는 “4년제 대학에 어학 점수, 자격증 등 그 동안 취업을 위해 열심히 달려왔는데, 중소 기업에 들어가기가 아까운 것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며 “중소기업에 취업하더라도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취업 후에도 바로 이직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답했다.

2월 통계청이 발표한 기업규모별·연령대별 평균 소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20대(1.6배), 30대(1.9배), 40대(2.2배), 50대(2.4배)로 연령이 높아질 수록 격차가 벌어졌다. 그래프=김민지 기자
2월 통계청이 발표한 기업규모별·연령대별 평균 소득.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20대(1.6배), 30대(1.9배), 40대(2.2배), 50대(2.4배)로 연령이 높아질 수록 격차가 벌어졌다. 그래프=김민지 기자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진 세대’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노력해온 현 청년 세대는 사회에 바라는 기대도 많은 상태로 첫 발을 내딛였지만 막상 현실은 이를 채워주지 못한다.

청년층에 요구하는 허들은 높지만 물가가 오르고 노동 대비 보상이 적은 사회가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SNS의 발달로 다른 사람들은 자유롭게 여행을 하며 돈을 벌거나, 투자로 월급의 몇 배를 얻는 모습에 상대적인 박탈감도 쉽게 느낀다.

오솔 작가는 “돈에 대한 스트레스를 본격적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시기다. 결혼, 내 집 마련 등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하지만, 현재 경제 상황 상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지 막막하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현실적 압박 속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기 쉽지 않은 나이이기도 하다. 힘들다고 말하면 아직 어린데 뭐가 힘드냐고 하고, 도전을 한다고 하면 곧 서른인데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얘기에 좌절감이 찾아온다”고 그는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현 시대적 흐름이 청년들의 어려움을 가중시킨다고 말한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학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보는 요인 중 하나가 집단 내부 격차”라며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계속해서 확대돼 오는 과정에서 전 세대에 비해 확실히 현 세대는 같은 집단 안에서 내부의 격차가 가장 심해진 세대”라고 설명했다.

개인의 노력으로 더 높은 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 또한 매년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 사회에서 노력한다면 개인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매우 높다’와 ‘비교적 높다’로 응답한 비율은 2011년 28.8%에서 2021년 25.2%로 감소했다. ‘자녀 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응답한 비율도 2011년 41.7%에서 2021년 30.3%로 낮아졌다.

함 교수는 “돈과 물질적 자본 외에 스펙, 네트워크 등 여타 자본까지 있고 없고에 따라 이후 삶의 경로가 달라지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세대”라고 덧붙였다.

수명이 100세라고 가정했을 때 20대 중후반은 1/4 정도 밖에 살지 않은 어린 나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사회적 독립, 즉 결혼과 내 집 마련을 준비해야되는 나이이며 마냥 어리다곤 할 수 없는 나이다. 사진·캡션=인스타그램 오솔스월드 갈무리

“월급도 적은데 일이라도 즐거웠으면”

과거에는 공동체 의식이 중요한 가치였다면 현재는 개인의 성장과 라이프스타일을 더 중시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는 점도 이전 시대와 다른 특징으로 꼽힌다. 노동자들의 인식은 바뀌었지만 실상 현실은 이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청년의 무기력감이 다른 연령층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온다”며 “여러가지 요인이 있는데 그중 삶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많으나 실제 만족도가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고 설명했다. 

함인희 교수 또한 “일에 부여하는 의미와 가치관이 예전과 달라졌다”며 “현 젊은 세대는 자기 발전에 대한 욕구가 크며 성장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즉 현 청년들에게는 노동으로부터 얻는 자아실현 또한 중요하다. 단순히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것뿐 아니라, 그 일이 나에게 맞는지, 내가 좋아하는 일인지, 나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세대라는 설명이다.

오솔 작가는 “청년들이 유독 힘들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어렸을 때 꿈꿔왔던 미래와 어른이 된 지금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라고 짚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드라마나 다양한 콘텐츠를 쉽게 접하며 살아왔는데, 드라마 속 주인공은 자신의 능력으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힘들고 지치더라도 자신의 꿈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인다”며 “그러나 실제로는 보람도 느끼지 못한 채 스트레스만 쌓이고 그렇다고 금전적인 보상도 충분치 않은 현실을 마주하고 좌절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어릴 때부터 경쟁 사회를 견디고 살아오며 작게나마 상상해왔던 이상적인 미래는 실상 이뤄질 수 없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느끼는 시기다. 반대로 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것은 ‘MZ 세대’라고 몰아세우는 것에 ‘내 잘못일수도 있겠다’는 고민에 빠지고 그간 달려온 긴 시간 속에서 ‘그냥 쉼’을 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함 교수는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 머무는 일터에서 젊은이들이 의미도 찾고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며 “한 사람의 생애주기에 따라 성장 지원, 일과 라이프의 균형 제공 등 정부 측면의 지원이나 전반적인 일터 내 변화가 있어야 하며, 경제적인 보상은 물론이고 기업·조직 문화가 정교해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솔 작가 또한 “결국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충은 단순히 취업의 문제를 넘어,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다”며 “그 열망에 현실이 따라와주지 않아 때론 지치게 되는데 청년들에게 ‘나약하다’, ‘유난이다’ 라는 비난보다, ‘힘내’, ‘넌 할 수 있어’라는 응원과 위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역 지하철 역사 내 붙어있는 시. 노량진은 9·7급 공무원·경찰 공무원·임용 시험 등 취업과 연계된 시험 준비를 위해 여러 성인 수험생들이 모이는 지역이다.
서울 노량진역 지하철 역사 내 붙어있는 시. 노량진은 9·7급 공무원·경찰 공무원·임용 시험 등 취업과 연계된 시험 준비를 위해 여러 성인 수험생들이 모이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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