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최근 ‘그냥 쉬었다’는 청년 수가 또 한 번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며 사회적 관심사로 주목 받았지요. 온라인에서는 근로 의욕을 잃고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의 고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도 대통령 직속 정신건강정책 혁신위원회를 출범하는 등 손발을 걷어붙였다고 합니다. 더피알은 기획연재 ‘빨간불 사회의 블루 청년’을 통해 청년 정신건강 위기의 주요 원인을 분석하고 정부와 민간의 협력 방안, 기업체들의 대응 전략을 소개합니다.
더피알=김병주 기자 |
청년 정신건강, 기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다
위기에 처한 청년의 정신건강 문제가 직접적인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청년재단이 지난해 청년 고립에 따른 경제 비용을 산출한 결과는 연간 6조7478억원으로 추계됐다. 이에 청년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은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정신건강을 케어할 수 있는 기업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보건복지부는 ‘2023년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해당 조사에서는 객관적 고립·은둔 위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 1만2105명 중 8874명의 심층조사 응답을 받았다.

고립·은둔 청년의 연령은 25~29세가 37%로 가장 많았고, 30~34세가 32.4%로 뒤를 이었다. 고립·은둔을 시작한 시기는 20대(60.5%)가 가장 많았다.
이들이 고립·은둔의 가장 큰 이유로 꼽은 것은 바로 취업 실패를 비롯한 직업 관련 어려움(24.1%)이다. 대인관계 문제(23.5%)가 그 뒤를 이었다. 미래 희망이 없다고 인식한 응답자는 66.3%, 정신건강이 안 좋다고 답변한 사람의 비중은 63.7%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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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취업문을 통과하고도 직장문화에 적응하지 못해 잦은 이직과 번아웃을 겪는 것도 문제다.
KB금융지주 KB경영연구소가 독립적 경제 활동을 하는 25~69세 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올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만든 ‘2024 한국 웰니스 보고서’에 따르면 20대 응답자의 최근 1년 이내 정신 건강 문제 경험률은 71.6%, 30대는 69.8%로 응답 연령 대 중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 응답자들이 경험한 정신 건강 문제 1위는 심각한 스트레스(34.1%)였다.
이에 따라 청년세대가 원활히 일하며 정신건강을 제고하기 위해 기업의 역할은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보건복지포럼’ 7월호에 게재한 ‘사회 불안과 인식의 코호트 간 비교’ 보고서는 ‘1986~2001년생’ 연령층의 취업 불황이나 연줄사회에 대한 불안이 높기 때문에 취업 지원과 함께 공정한 고용 규칙이 적용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AIA생명·SKT, 캠페인으로 청년 정신건강을 지원
AIA생명은 2022년 2월부터 소셜 엔터프라이즈 네트워크(SEN)’의 청년정신건강 컨소시엄과 파트너십을 맺고 청년들을 지원하는 청년정신건강사업(YMH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뉴미디어를 활용한 아트 테라피와 자가진단검사, 정서 지원 강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년들의 정신건강 증진을 지원하고 그 중요성을 알려나간다는 취지다.

같은 해 5월 AIA 생명은 대학 축제 기간을 맞아 성균관대를 시작으로 성신여대, 경희대, 중앙대에서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진행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진로 고민, 번아웃, 인간관계, 자존감 등에 대해 전문 심리상담사로부터 상담을 받고, 다른 학생들의 사연에 댓글을 달거나 공감을 전하는 ‘YMH 마음약방’을 운영했다.
온라인에서는 그림을 그린 사람의 무의식을 표출하고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되는 미술치료 기법인 ‘난화 그리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피터 정 당시 AIA생명 대표는 “청년정신건강사업은 기업이 사회에 기여해야 할 책임 중 반드시 필요한 활동이라고 생각한다”며 “해당 사업은 청년들이 더 건강하게, 더 오랫동안,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데 근간이 되는 정신건강 향상을 도모하고 일상생활을 더욱 잘 할 수 있도록 돕는데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어 2023년 5월부터 10월까지는 YMH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청년의 아이디어로 계획한 ESG활동을 기업과 함께 실행하는 ‘청년 ESG 기획봉사’를 시행했다. 최종적으로 선발된 5팀에게는 ESG 전문교육과 함께 성과 지표 멘토링을 지원함으로써 사회의 긍정적 변화를 주도해나갈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했다.
AIA생명은 올해 5월 1일 청년들의 성공적인 경제적 독립을 통한 ‘재무적 건강’(Financial inclusion) 증진을 위해 경제 전문 유튜버 전인구 소장을 초청한 금융 교육을 진행한 한편, 5월 20일부터 10월 8일까지 열린 ‘2024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 AIA 기업동행정원을 마련해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자연 속에서 정신적 건강을 증진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SKT는 2022년 5월부터 11월까지 청년재단과 협업한 ‘오픈콜라보 클래스’를 통해 사회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직무 경험을 쌓고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도왔다. 오픈콜라보 클래스는 심리지원뿐 아니라 직무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한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자기이해·진로설계 프로그램, 무기력·은둔 케어 워크숍, 동기부여 커뮤니티 등 맞춤형 인생설계를 해주는 ‘고민 디톡스 프로그램’과 SKT 현직자 멘토링과 함께 △청년 우울 △플라스틱 쓰레기 △리사이클링 △교통약자 △시작장애인 관련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SKT의 ESG 사업을 직접 기획하는 팀 프로젝트 ‘Do ESG Class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올해 10월 9일부터 11월 30일까지는 자사 운영 ICT 복합문화공간인 T팩토리에서 ‘감정’을 키워드로 한 체험 전시인 ‘감정 과수원’을 운영한다.
SNS에는 익숙하지만 스스로 되돌아볼 시간은 가지지 못하는 청년 세대를 위한 감성 체험이 운영 목적으로, 지난 2월 청년세대의 도파민 중독 탈피를 위해 진행했던 ‘송글송글 찜질방, 도파민 쫙 빼드립니다’ 전시의 연장선상이다.

방문객들은 개인별 감정 인지 수준을 측정한 후 4단계에 걸쳐서 미니 화분을 완성하는 여정을 거친다. 최근 인상 깊었던 일에서 느낀 감정 3가지를 적어 3가지 흙을 담고, 자신이 느낀 감정의 원인을 떠올리며 씨앗을 심은 뒤, 마지막으로 그 감정의 씨앗에 소중한 이름을 붙여주는 순서다.
김상범 SK텔레콤 유통담당은 “청년세대와 진심으로 공감하고 소통하기 위해 티팩토리에서 다양한 체험형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며 “감정 과수원을 방문하는 고객들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시간을 통해 행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직원 대상 심리상담센터 운영하는 카카오·현대모비스·하이브
청년들이 직장에 들어와서도 직무 수행에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번아웃도 문제다.
국내 유일의 기업 전문 정신건강 연구기관인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근로자 1만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우울장애를 앓고 있는 직장인 중 번아웃 증상인 신체적‧정신적 탈진이 일어날 경우 자살 사고의 위험률이 3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장애가 없는 직장인의 경우에도 자살 사고 위험률이 77%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청년들이 정신적인 문제를 겪을 때 흔히 드러나는 현상이 퇴직이다.
딜로이트의 MZ세대 보고서 여론조사를 살펴보면 2022년 M세대 응답자의 24%, Z세대의 40%가 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나타났다. 이들은 퇴사 사유로 새로운 업무환경과 인간관계에서 오는 불안감, 우울증, 번아웃 등을 꼽았다.
번아웃과 우울장애를 극복해서는 정신 건강이 기업의 관리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2030세대 구성원들의 지친 마음까지 챙기기 위해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현재 점점 확산하는 추세다.
처음에는 콜센터 직원이나 항공기 승무원 등 감정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시행됐지만, 최근에는 주요 대기업과 일부 IT기업 등 다양한 직군에서 운영되고 있다. 직원들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이 중요하다는 인식 자체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카카오는 사내에 자체적으로 전문 상담가를 상주시켜 직원을 케어하고 있다. 올해로 10년차를 맞은 ‘톡테라스’ 프로그램을 통해 마련해 △1대1 심리상담 △매일 오전 20분 명상 △심리검사와 해석상담 △퍼포먼스 코칭 등 직원별 상황에 맞는 접근을 제공한다.

톡테라스 서비스를 처음 제안한 이영선 심리치료사는 “가장 많이 들어오는 상담 종류는 관계, 정서 부분”이라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영선 심리치료사는 “회사라는 공간은 구조적으로 자기 상황과 감정,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기 쉽지 않으며, 지인이나 동료와 나눌 수 있는 부분에도 한계가 있다”며 “따라서 회사 상황을 잘 아는 전문가가 상주한다는 것은 직원들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경험적 믿음이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모비스 또한 10년 넘게 개인 심리 상담부터 코칭, 위기관리 개입, 심리검사 자문을 아울러 지원하는 ‘힐링샘’을 운영하고 있다. 2014년 서울 강남구 역삼 본사에서 시작한 힐링샘은 경기도 의왕 연구소, 충북 진천 공장 등 전국 사업장으로 확대됐다.

힐링샘은 전문 심리상담사의 상담과 치료 외에 해외 주재원 대상 화상통화 상담, 매월 힐링레터 발간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상담 내용은 회사 업무에 한정되지 않고 다양하게 이루어지며, 이용 직원은 Z세대부터 간부급까지 다양하다. 직접 상담실을 방문하기 어려운 직원들은 온라인 전용 자가진단 서비스, 지방 사업장 내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하이브는 올해 1월부터 서울 용산 사옥에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초로 전문 의료인이 상주하는 사내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K팝 아티스트들의 취약한 정신건강과 부족한 관리 시스템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사내의원은 아티스트와 연습생을 포함한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게 마음돌봄과 회복체계를 강화하는 현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이브 사내의원에 상주하는 김준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작곡 이론과 오케스트라 지휘 과정을 공부한 특이한 이력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이브 관계자는 “음악이라는 공감대를 통해 효과적인 진료·치료가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부연했다.
이외에도 하이브는 ‘마음 HYBE-FIVE’ 심리상담 서비스로 구성원들의 정신건강 관리를 하고 있다. 직무뿐 아니라 개인정서, 가족 문제 등 다양한 고충을 전문상담가에게 상담받을 수 있고, 희망하는 센터에서 대면, 화상, 전화 서비스를 이용 가능하다.
‘EAP도 이용 가능’ 중소기업에도 심리상담 기회
하이브가족상담센터는 근로자지원프로그램(EAP) 서비스와 통합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근로자지원프로그램은 기업과 상담센터와의 협약을 통해 진행되며, 직장과 가정 내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어려움이나 고민 해결을 위한 전문가 상담 및 코칭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근로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불확실한 사업 환경으로 인한 상시적 불안과 스트레스를 겪기 쉬운 작은 조직도 기업 규모에 관계없는 정신건강 관리 지원에 나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복지공단에서 2010년부터 상시 근로자 수 300인 미만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근로자지원프로그램을 무상 운영한다.
직무 스트레스, 조직 내 소통 문제, 정서 문제, 자살 등 15가지 분야의 비밀 상담을 제공하고 있는데, 대면 상담 외에 온라인 상담과 회사가 다 같이 받는 집단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근로자지원프로그램 활성화는 지난해 12월 정부가 발표한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의 4대 전략 및 핵심과제 중 하나다.
정부는 2025년까지 현황조사 및 발전방향을 연구하여 EAP 제공 우수기업 포상 및 홍보를 계획 중이라 밝혔다. 현재까지 누적 이용자수는 13만명에 달하며, 이용자 만족도 점수도 3년 평균 96.7점이라는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