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SK家 선대회장 미완의 꿈, 최태원 회장이 완성하다

세계1위 SK하이닉스의 신화 (上)

한국 기업사에 유례없는 언더독 신화
글로벌 대형 펀드 집중적 조명
섬유에서 반도체까지, 세대 잇는 꿈의 계보

  • 기사입력 2025.11.05 13:26
  • 기자명 김경탁 기자

[편집자주]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400조 원을 넘어섰다. 2012년 인수 당시 ‘위험한 베팅’으로 불리던 결정은 13년 만에 한국 산업 구조를 바꾼 상징이 됐다. 본 기획은 한국 기업사에 유례없는 언더독 신화로, 글로벌 대형펀드들의 집중적 조명을 받고 있는 SK하이닉스 인수의 배경과 그 이후의 변화를 돌아보며, ‘제조의 피를 다시 흐르게 한 결단’이 오늘의 성과로 이어진 과정을 짚는다. 상편에서는 최태원 회장의 결단과 세대를 잇는 산업 서사를, 하편에서는 리밸런싱과 밸류에이션으로 확장된 SK의 미래 전략을 다룬다.

더피알=김경탁 기자|2011년 11월 10일 새벽, 서울 서린동 SK사옥. 그날은 하이닉스 인수 입찰 마감일이었다.

밤샘 회의에 지친 대부분의 임원들은 인수에 회의적이었다. “채권단 관리 기업을 인수해선 안 된다”, “통신·정유 중심의 안정된 포트폴리오를 왜 흔드느냐”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최태원 회장은 조용히 듣다가 짧게 말했다.

“승자의 저주를 걱정하는 건 누구나 합니다. 하지만 경영자는 가격보다 ‘미래의 구조’를 봐야 합니다.”

이날 오후 접수 마감 7분을 남기고 제출된 입찰서는 SK의 방향을 바꿔놓았다.

이듬해 3월 26일, ‘SK하이닉스’라는 새 간판이 걸린 날. 인수식 자리에서 최 회장은 원고를 덮고 즉흥적으로 말했다.

“하이닉스를 인수하고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SK와 어떤 시너지가 있느냐’였습니다. 저는 이 회사를, 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의 연장선이라 생각합니다.”

최종현 선대회장이 1978년 선경반도체로 시작했다가 오일쇼크로 3년 만에 접었던 ‘제조의 꿈’이 31년 만에 되살아난 순간이었다. “통신·정유 중심의 그룹이 반도체 제조에 나선다”는 회의론은, 역설적으로 SK가 스스로의 뿌리를 복원하는 선언이었다.

2012년 2월 15일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을 찾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구내식당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날 하이닉스가 행복할 때까지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뛰겠다고 했다.
2012년 2월 15일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을 찾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구내식당에서 임직원들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최 회장은 이날 하이닉스가 행복할 때까지 어떤 역할도 마다하지 않고 직접 뛰겠다고 했다.

산업의 구조를 바꾼 70년의 집념

인수로부터 13년 뒤인 2025년 10월 29일,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400조 원을 넘어섰다. 2012년에 13조 원에 불과하던 회사가 30배 성장한 것이다. 시가총액 300조 원을 돌파하면서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삼성전자가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지 불과 열흘 만의 기록이다.

이 숫자는 단순한 실적의 결과가 아니다. 제조의 피를 다시 흐르게 한 13년 전의 결단이 만든 오늘은 산업의 구조를 새로 설계한 70년의 집념이 만든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경제가 막 첫걸음을 떼던 1953년, 선경직물을 세운 최종건 창업회장은 단순히 직물을 짜는 회사를 넘어, 원사에서 직물까지를 모두 아우르는 대한민국 제1의 종합섬유메이커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품었다.

다음 단계는 화학섬유의 원료산업인 석유화학공업이었고 1973년 일본 이토추·데이진과 합작해 선경석유를 설립했지만, 그해 제1차 석유파동으로 꿈은 잠시 멈추게 됐다. 그리고 그해 11월, 최종건 회장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경영은 동생 최종현 선대회장에게로 이어졌다.

최종현 회장은 수직계열화 방향을 현실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는 ‘10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 계획’을 신념으로 삼고, 석유화학·에너지 사업을 그룹의 핵심 축으로 세웠으며 형이 미완으로 남긴 석유 사업의 꿈을 1980년 대한석유공사 인수와 1984년 북예멘 유전개발로 완성시켰다.

이와 동시에, 미래 산업의 주력으로 ‘기술 제조’에 눈을 돌린 최종현 회장은 1978년 선경반도체를 설립하며 전자산업 진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1979년 제2차 오일쇼크가 닥치며 자금난이 심화됐고, 반도체 사업은 3년 만에 중단됐다.

그렇게 SK의 첫 번째 도전은 결실을 맺지 못했지만 최종현 회장의 반도체에 대한 꿈은 “언젠가 기술로 산업의 근본을 바꾸겠다”는 의지로 남았다.

1988년 6월말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의 에틸렌·폴리올레핀 울산공장 건설현장을 시찰하는 최종현 회장.
1988년 6월말 유공(현 SK이노베이션)의 에틸렌·폴리올레핀 울산공장 건설현장을 시찰하는 최종현 회장.

정유에서 통신으로, 산업의 신경망을 잇다

1994년, SK는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을 인수하며 또 한 번의 구조적 변화를 맞았다. 정유와 화학이 ‘물질의 흐름’을 세웠다면, 통신은 ‘정보의 흐름’을 잇는 산업이다.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라, 제조의 논리를 데이터의 세계로 옮겨 놓은 ‘수직계열화의 디지털 전환’이었다.

최종현 회장은 “정보는 21세기의 원유가 될 것”이라며, 통신을 SK의 미래 성장 축으로 세웠다. 이 결정은 SK가 ‘물리적 에너지 기업’에서 ‘데이터 기반 플랫폼 기업’으로 확장하는 전환점이었다.

네트워크를 통해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흐르고, 축적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SK는 ‘정보의 물리학’을 이해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경험은 훗날 하이닉스를 인수해 데이터의 그릇(반도체)을 직접 설계하고, AI 시대에 데이터의 길(인프라)을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다.

즉, 정유가 에너지의 혈관을 만들었다면 통신은 산업의 신경망을 세웠고, 반도체와 AI는 그 위에서 생각하고 학습하는 ‘두뇌’가 되었다. 이로써 SK는 물질(정유), 정보(통신), 지능(반도체·AI)을 모두 잇는 그룹으로 진화했다.

세대를 이어 흐른 그 한 줄기의 꿈, 산업의 근본을 스스로 세우겠다는 신념은 오늘날 SK하이닉스의 기술 자립과 ‘풀스택 AI 메모리’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가 못 다 이룬 꿈을 다시 잇는 이야기의 시작이다.

2012년 3월 26일 경기 이천 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SK하이닉스 출범식'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내빈들이 SK하이닉스의 본격 출범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2012년 3월 26일 경기 이천 하이닉스 본사에서 열린 'SK하이닉스 출범식'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내빈들이 SK하이닉스의 본격 출범을 알리는 퍼포먼스를 갖고 있다.

제조 DNA의 귀환, SK 체질의 대전환

SK가 하이닉스반도체를 인수하던 2011~2012년 당시 반도체 시장은 얼어붙어 있었다. PC 수요 둔화, 공급 과잉, 가격 폭락이 겹쳤고, 일본의 대표 메모리 반도체 회사였던 엘피다메모리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메모리는 끝났다”는 말이 돌았다.

그 한가운데 있던 하이닉스는 2001년 워크아웃을 거쳐 2005년 조기 졸업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기업으로 평가됐다. 매출은 10조 원대 초반, 시가총액은 약 13조 원. 기술력은 세계 2위였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담했다. 하지만 SK는 이 기술력에 미래의 가능성을 보았다.

최태원 회장은 임원진에게 “제조의 피를 다시 흐르게 하겠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정유·통신 중심의 내수형 구조를 넘어, 세계 공급망에서 기술을 설계하는 그룹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출발점이 하이닉스였다.

하이닉스 인수는 SK의 경영 문법을 새로 쓴 사건이기도 했다. SK는 반도체를 중심에 두고 웨이퍼(SK실트론), 케미컬(SK머트리얼즈, SK트리켐), 패키징(SK하이닉스시스템IC) 등 소재·부품·장비를 잇는 밸류체인을 촘촘히 세웠다. 이천과 청주를 잇는 생산 거점 위에, 현재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통해 차세대 AI 메모리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전의 수직계열화가 생산 라인을 연결했다면, 하이닉스 이후의 계열화는 ‘기술을 설계하는 구조’로 진화했다. 이는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라 체질의 변화였다. SK는 이제 글로벌 기술 공급망 속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는 산업 구조로 옮겨갔다.

최 회장은 2023년 이천포럼에서 “반도체는 더 이상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시스템과 생태계의 일부”라며 “기술과 신뢰가 산업의 근간을 이룬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하이닉스 이후 AI·배터리·에너지·데이터센터·바이오 등 SK의 신사업은 모두 반도체의 ‘구조적 사고’ 위에서 설계됐다. SK 특유의 수직계열화 DNA가 글로벌 기술 산업으로 확장된 결과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1월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5' 키노트 세션에서 'AI Now & Next'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1월 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5' 키노트 세션에서 'AI Now & Next'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패기의 시간, 결단이 증명한 결과

하이닉스는 인수 이후 SK의 전폭적 지원을 받으며 ‘재무적 안정과 기술 자율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장기 자본 투입은 메모리 산업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연구개발 주기를 안정화하는 기반이 되었다.

하이닉스의 성장 서사는 SK의 핵심 경영이념인 ‘패기’로 요약된다. 10년 넘게 이어진 투자와 연구, 그리고 사람에 대한 확신이 오늘의 기술력을 만들었다. 그 중심에 인공지능 시대의 핵심 부품, HBM(고대역폭 메모리)이 있다.

SK하이닉스가 2013년에 세계 최초로 개발하고 2015년에 양산을 시작한 HBM은, 데이터센터와 생성형 AI가 산업의 중심이 되며 ‘AI 반도체의 심장’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시장 규모가 작다”,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회의적이었지만 SK하이닉스는 품질 개선과 고객 신뢰 확보에 집중했다. 연구·품질·패키징·영업이 하나의 가치사슬로 연결된 ‘원팀 체계’는 의사결정 속도와 고객 대응력을 비약적으로 높였다. 제품 중심에서 시스템 중심으로, 성과 중심에서 협업 중심으로 조직이 재설계됐다.

HBM은 단순한 고성능 제품이 아니라, 수많은 고객 검증과 품질 인증을 거쳐 신뢰로 쌓은 결정체다. 그렇게 SK하이닉스는 기술 완성도·수율·고객 협업 역량에서 글로벌 선두로 평가받는다. HBM3E는 엔비디아·AMD 등 글로벌 팹리스들과의 공동 설계 수준에 이르렀고, HBM4는 전 세대 대비 대역폭을 두 배로 높이고 전력 효율을 40% 개선했다.

AI 메모리는 이제 데이터센터를 넘어, 스마트폰·노트북·자율주행차 등 기기 안에서 직접 연산을 수행하는 ‘온디바이스(온보드형) AI’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런 변화에 맞춰 고객별 사용 환경에 최적화된 메모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페셜라이즈드·커스터마이즈드’ 전략을 강화했다. 단순히 메모리 칩을 판매하는 수준을 넘어, 소재·패키징·품질·AI 연산 구조까지 한 번에 설계하는 ‘풀스택(Full-Stack) 메모리 시스템’으로의 진화를 뜻한다.

즉, 제품이 아닌 ‘AI를 위한 구조 전체를 만드는 기업’으로 변모한 것이다. 그 진화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었다. 가격이 아니라 구조를 보고, 단기성과가 아니라 시간을 믿은 결단. 그 철학이 오늘의 SK하이닉스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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