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병주 기자 | 삼성전자가 현재 상황이 경영 위기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연구개발(R&D) 투자를 대대적으로 확대해 미래 대비에 나서고 있다. 아울러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로부터 5세대 HBM인 'HBM3E 8단' 공급 승인을 얻어내며 메모리 핵심 공급사로 도약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순철 삼성전자 신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31일 오전 첫 실적발표회에 나서며 "현재 경영 현황이 쉽지 않다"고 인정했다. 아울러 "삼성전자는 위기 때마다 이를 극복하며 성장해 왔다"며 현 위기 역시 조만간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박 CFO는 이날 오전 진행된 2024년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전화회의)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저를 포함한 경영진 모두 현재 경영 현황이 쉽지 않음을 알고 있으며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각 사업 특성상 사이클에 따른 변동성은 분명히 있다”며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와 주요 사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현재 이슈는 점차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위기 맞지만, R&D가 있다 ‘중장기 경쟁력 강화’
삼성전자는 최근 7년간 R&D 투자는 매년 늘려왔다. 연간 전사 영업이익이 6조5700억원에 그친 지난 2023년에도 R&D에는 역대 최대인 28조3400억원을 투자했다. 이때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사상 처음 두 자릿수(10.9%)를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 연구개발비는 10조 3000억 원으로 분기 최대를 기록했다. 연간 기준으로도 35조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함께 읽을 기사: 삼성전자, 사상 두 번째 年매출 300조↑ 달성... 반도체 약세에 기대치 하회
삼성전자는 "2025년 세부적인 투자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메모리 투자는 전년 수준과 유사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반도체, 고성능 메모리, 서버 관련 제품 등 미래 기술 투자를 위해 기흥사업장에 짓는 차세대 반도체 R&D 단지에 2030년까지 약 20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설비반입식을 진행한 기흥 최첨단 복합 연구개발 단지 'NRD-K'(New Research & Development-K)는 올해 중순부터 본격적인 R&D 가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삼성 HBM3E 8단 승인…중국 특화 AI 가속기에 공급
한편 삼성전자는 올해 하반기 차세대 HBM인 'HBM4' 양산을 통해, 엔비디아의 핵심 공급사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삼성전자가 지난달 엔비디아로부터 HBM3E 8단 제품의 퀄테스트(품질검증)를 통과했다고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31일 보도했다.
이 제품은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위해 맞춤화해 개발한 저사양 인공지능(AI) 가속기 칩 생산을 위해 공급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블룸버그는 삼성전자와 엔비디아가 이와 관련한 논평에 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삼성전자가 엔비디아로부터 HBM3E 칩에 대한 승인을 얻기 위해 1년 동안 고군분투한 끝에 나온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HBM3E 8단은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공급을 시작한 최신형 HBM3E 제품의 이전 모델이다. SK하이닉스는 해당 제품보다 업그레이드 된 HBM3E 12단 제품을 지난해 말부터 엔비디아에 공급 중이다.
삼성전자는 HBM3E 12단 제품은 아직 품질검증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인증 통과는 하반기가 유력한 상황이다.
메모리 업계에서 삼성전자의 엔비디아 공급 여부는 최대 관심사로 꼽힌다. 앞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초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삼성 HBM의 설계 문제를 처음으로 직접 언급하며 “삼성은 새로운 디자인을 설계해야 한다. 할 수 있고, 매우 빠르게 작업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