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병주 기자 | 데이터가 모두의 화두가 된 시대, 마케터들에게 데이터 활용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딥러닝, 머신러닝, DMP(데이터 관리 플랫폼), 자동화 마케팅 등 무거운 주제가 과연 마케터가 다룰 영역이 맞는지도 의문이다. 많은 기업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싶어 하지만, 거창한 데이터를 단번에 처리해줄 분석 툴과 시스템 구축에 집착하며 ‘끼워 맞추기식’으로 빠른 결론을 내려는 태도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빅데이터를 다루는 마케터들은 수단이 아닌 목적을 바라보아야 한다. 유의미한 데이터로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선 분석 목적을 정확히 세우고, 데이터 자체의 정확성보단 경향성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또 총체적 안목과 스토리텔링 역량을 갖추고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안목과 감각, 즉 데이터 지능이 갖춰져야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데이터에서 의미를 도출해 마케팅 전략으로 이어내기 위해서는 이성뿐만 아니라 감성의 역할도 중요하다. 빅데이터 분석 기반 마테크 기업 어센트코리아는 지난 2월 27일 ‘데이터 상상력’을 주제로 데이터 마케팅을 위한 사고방식을 실제 사례와 함께 알아보았다.

강연을 맡은 김유나 서울예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데이터는 선언적 지식이 아니라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은 절차적 지식”임을 강조하며 “데이터 마케팅의 첫걸음은 데이터로 소비자를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덧붙였다. 대홍기획에서 브랜드 컨설팅을 맡고 빅데이터 마케팅 센터장을 역임한 그는, 데이터를 활용하는 대시보드가 나날이 쉬워지고 있는 현재 사용자들은 이론적·통계적 지식보다는 감각과 통찰을 발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업이 간과하기 쉬운 것 중 하나는 빅데이터 솔루션의 구축이 아니라 운용이 더 문제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기술이 안착할만한 프로세스 혁신을 위해선 조직 분위기와 업무 방식, 기술을 다루는 사람의 안목과 자세도 바뀌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역량이 바로 데이터 상상력이다.
마케터의 인사이트는 점처럼 흩어져 서로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는 데이터를 연결해 비즈니스적 가치를 도출하는 핵심 역량이다. 데이터 모음에서 정보를 찾아내고, 정보에 경험을 결합해 지식으로 발전시키며, 지식에서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데이터는 가치로 전환된다. 예를 들어 마케터는 ‘성수동에 사람이 많이 모인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해 ‘한국의 소비 트렌드는 핫플레이스를 따라 움직인다’는 경향성을 찾아낼 수 있다. 이에 따라 ‘다음번에 뜰 핫플레이스를 선점해 팝업스토어를 기획해보자’는 해결책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단순한 제품 판매만으로는 가치 세팅을 할 수 없다”며 “마케터는 제품 판매자로서 가치를 만들어 생산자(기업)와 소비자(구매자) 연결하는 작업에 데이터를 활용하는 것”이라 설명했다.
마케팅이라는 대화의 도구, 데이터…말문이 열리면 지갑이 열린다
과거 마케팅 산업의 이슈가 정량적 접근으로 KPI(핵심성과지표)를 관리하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정성적 접근으로 제품·콘텐츠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 소통을 관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마케팅의 본질이 교환이고, 교환의 조건이 소통이라는 점에서, 소통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데이터는 의미가 없다.
김 교수는 마케터가 데이터를 통해 소비자의 욕구와 관심사를 판독하려면 명확한 문제 정의와 더불어, 자신이 분석한 결과가 전체 소비 여정의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알 수 있는 메타인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사결정의 흐름을 바꾸는 강력한 정보인 ‘맥락 키워드’는 소비자의 마음으로 진입하는 CEP(category entry point)가 되어준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데이터 마케팅을 위해 기술적 분석력(정확성)을 높이는 데는 시스템 구축과 데이터 확보를 위한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며 “휴리스틱의 형태로 나타나는 인간의 창의력(확장성)을 높이는 데 힘써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부연했다.
데이터 마케팅을 위해서는 5가지의 데이터 사고력(△기획력 △선별력 △분석력 △문해력 △창의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데이터 기획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는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셰프들이 요리를 기획하는 과정이다. 누가 무엇을 먹을지, 무슨 맛을 좋아할지, 재료들 간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지 셰프들이 기획하듯, 마케터는 분석 툴로 데이터를 조리하고, 기획안이라는 레시피에 따라 비즈니스 가치라는 요리를 완성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 규정이다. 예를 들어 마케터는 판매부진이라는 표면적인 문제 이면에, 현황 파악을 통해 고객 이탈의 진짜 원인이 경쟁사 프로모션, SNS상의 부정적 여론, 품질 불만족 중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마케터들이 던지는 질문은 제품 중심이 아니라 소비자(타깃) 중심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데이터 선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객이 구매 여정의 각 단계마다 주로 활용하는 데이터가 모두 다르다는 점을 숙지해야 한다. 정형 데이터(구매, 고객 데이터 등)나 반정형 데이터(로그, 센서 데이터)를 위주로 한 데이터 통합 플랫폼 구축은 CRM(고객 관계 관리)에는 유리하지만 신규 고객 확보는 비교적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소비자 개인의 취향을 더 잘 드러내는 검색 데이터의 확보가 신규 고객 유치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다.
김 교수는 “세상에 존재하는 데이터의 70% 가량은 기업이 아닌 개인에 의해 생성되는 비정형 데이터”라며 “그 비중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데이터 분석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4가지 데이터 분석 스킬을 들 수 있다. 일본 유통업의 대부 스즈키 도시후미 전 세븐&아이홀딩스 회장 겸 CEO가 자신의 비즈니스 철학과 맞닿아있다고 언급한 해당 스킬들은 각각 △현상 파악 △패턴 탐지 △트렌드 예측 △개인화 서비스로 정리된다. 이 과정에서 오염된 데이터들을 걸러내기 위해 데이터 패턴이 어떤 모양의 ‘선’을 그리고 있는지도 관찰해야 한다. 패턴이 하락세를 그리는지, 역전 그래프 형태인지, 정체 상태거나 계단식 성장을 하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고 나야 현상의 실체를 파악하고 실제 마케팅 솔루션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반발짝 앞서가는 디코딩 능력…‘콘셉트’가 대가 지불의 열쇠다
예를 들어 검색 데이터를 통해 영화 마케팅에 나선다고 하자. 김 교수는 영화 관객 수를 기준으로 1000만, 500만, 300만, 그 이하의 관객 수를 거둔 영화들을 분류하여 시사회 전후 검색 패턴을 살펴본 결과, 1주일 내로 흥행 여부가 판가름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시사회 1주일 내로 어떤 마케팅 이슈를 만드는지가 중요하다는 인사이트가 생긴 것이다.

다른 예시로는 대홍기획 재직 당시 하반기 인기 패션 상품 예측의 경험을 공유했다. 인기가 계속되던 롱패딩을 계속 띄울지, 플리스 재킷이나 사파리 점퍼를 띄울지 결정하기 위해 시계열 분석과 트렌드 매트릭스 등을 동원했고, 각 패션 아이템마다 히트스코어를 만들었다. 그리고 소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가장 뜨고 있는 아이템 6종의 성장주기를 그려보았다.
그 결과 패션 아이템 트렌드가 2년 주기로 바뀌는 가운데, 기존에 메가트렌드로 나타나던 롱패딩은 제품 활용 배리에이션의 폭이 제한적이라는 한계로 그 주기의 끝에 와있는 상태로 나타났다. 반면 이머징 트렌드로 나타났던 플리스 재킷의 제품 분화 경향과 주문 당 비용(CPO)이 높게 나타나 이를 주력 상품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후 몇 달도 되지 않아 신문 지면에 ‘롱패딩이 지고 있다’는 식의 기사들이 뜨기 시작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데이터 문해력은 필연적으로 데이터에 올바른 의미를 부여하는 리터러시가 필요하다. 페브리즈를 구매하려는 소비자의 진짜 욕구를 파악하려면 내면의 욕망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 지점을 발견해야 한다. 냄새를 없애고 싶지만 옷을 늘 세탁하기에도 귀찮다는 욕구 충돌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뿌리는 세정제는 냄새만 없앤 것이지 여전히 더럽다’는 고정관념을 아예 뒤집어버릴 수 있는 강력한 콘셉트가 필요하다. 즉, 제품과 서비스의 가치를 설계해서 존재감을 부각하고 고객이 대가를 지불할 이유를 만드는 것이 바로 콘셉트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창의력을 위해선 개별 브랜드에 맞는 전략 프레임과 시나리오 개발이 필요하다. 제조사 중심으로 제품의 시장 지분을 높이던 과거의 시장 접근 방식과 달리 오늘날에는 고객의 일상 자체에서 자사 브랜드의 지분을 높여야 할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기존의 STP(Segmentation, Targeting, Positioning) 마케팅 전략 외에도 디지털 웨이브 전략을 통해 고객 트래픽을 설계하고, 이후 브랜드 플랫폼 전략을 통해 고객 체류와 관계 유지를 지속적으로 이끄는 3단계의 과정이 바로 ‘뉴노멀 마케팅’이다.
피부 대신 발상을 뒤집은 콘텐츠, ‘현명한’ 날 면도기 캠페인 기획
김 교수가 지난해 서울예대 학생들과 기획해본 와이즐리(Wisely) 면도기 마케팅 캠페인 사례는 뉴노멀 마케팅의 3단계를 자세히 드러낸다. 5중날이 특징적인 와이즐리 면도기는 이전까지 가성비로 어필하던 브랜드였지만, 면도 습관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핵심 타깃인 20대 남성 고객의 관심이 저조하던 상황이었다.

연령대별 와이즐리 결제비율은 20대가 7.9%, 30대가 30.2%, 40대는 17.5%로 나타났는데, 20대 남성들은 그루밍 트렌드 확산으로 피부 관여도가 높아지면서 상처가 날 수 있는 날 면도기를 피하는 경향이 관찰됐다. 20대 남성들이 날 면도기의 불편사항으로 가장 많이 꼽은 점도 바로 ‘상처문제’(37.9%)로 나타났다. 이를 드러내듯 2024년 10월 리스닝마인드 패스파인더를 통해 조사해본 결과 날면도기에서 전기면도기로 이탈하는 검색경로(194건)가 그 반대 경우(19건)보다 훨씬 많았다.
면도날을 리포지셔닝하기 위해선 면도기를 피부관리 차원에서 볼 필요가 있었다. 면도기 사용 빈도가 하루 한 번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68.5%, 2~3일에 한 번이 17.1%였던 상황에서, 날 면도기보다 세척·교체가 불편한 전기면도기가 장기적으론 날 관리 소홀로 인한 피부 트러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따라서 새로운 면도 루틴 제시를 위해 기존의 저가 면도기라는 어필 요소 대신 청결한 피부관리의 첫 단계를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로 했다.
‘남성 피부 고민’의 키워드 검색량을 보면 ‘남자 피부 뒤집어짐’(2610건), ‘남자 피부 트러블’(1672건), ‘남자 피부 모공’(1605건) 등이 최상위에 배치됐다. 여기에 오픈서베이 조사 결과 평소 피부 트러블이 고민이라는 20대의 비율이 57%, 30대가 50.8%로 드러나면서 이에 힘을 실었다.
남성들은 ‘눈에 보이는 흠이 없는 깔끔한 피부’라는 니즈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 남성의 스킨케어 제품 소비액이 1인당 9.6달러로 세계 1위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고, 오픈서베이 조사 결과 남성의 44%가 피부관리를 위해 피부에 좋은 영양제/식품을 섭취하고 있다고 답한 점은 주목할만했다. 이외에 레이저, 톤업 등 쁘띠미용 시술을 받는 남성 고객도 매년 증가세로 나타났다.

‘피부 관리의 날’ 캠페인은 다양한 디지털 웨이브 전략을 수반했다. 트리플 미디어(페이드, 온드, 언드 미디어)를 통한 IMC(통합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전략과 콘텐츠 전략 외에도 직접 콘텐츠 제작 가이드를 마련했다. ‘남자의 피부관리는 면도부터 시작된다’는 카피의 유튜브, 인스타그램 노출 광고와 오가닉 키워드를 충분히 배치한 홈페이지·블로그 콘텐츠, 촬영 방식과 길이, 업로드 시점과 해시태그까지 고려한 인플루언서 마케팅 콘텐츠 가이드라인이 제작됐다. 온오프라인 상에서 면도기 제품 시연과 참여형 라이브 커머스, 팝업 체험 프로모션 연계도 병행하는 방안이 제기됐다.
와이즐리 브랜드 플랫폼 전략으로는 서포터즈 활동과 매거진 발행, 그리고 ‘피부 관리하는 날’ 세일즈 키트를 통한 구매 가이드 프로모션이 떠올랐다. 2종의 제품 콘셉트에 맞게 각각 트러블 관리에 초점을 맞춘 ‘트러블 없는 날’, 기초 스킨케어에 초점을 둔 ‘케어하는 날’ 키트를 프로모션해 새로운 피부관리 루틴을 정착을 도모했다.
김 교수는 “디지털 접점 활용의 관건은 콘텐츠 관리”라며 “마케터들이 꼭 외부 의뢰를 거치지 않더라도 검색 데이터를 마케팅에 성공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