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병주 기자 | 해외 매출이 전체의 80%를 차지하는 LG전자에게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와 글로벌 경쟁 심화는 뼈아픈 충격이었다. 지난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감소하며 수익성 방어가 쉽지 않았다. 다만 생활가전, 전장(자동차 전자장비), 냉난방공조(HVAC) 부문은 비교적 견조한 실적을 내며 버팀목 역할을 했다.
회사는 하반기에도 가전 수요 회복 지연과 가격 압박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질적 성장’을 돌파구로 제시했다. 특히 B2C 중심의 성장 한계를 넘어, 전장·HVAC 같은 B2B 사업과 구독·웹OS 등 논-하드웨어 플랫폼, 소비자 직접판매(D2C)를 신성장 축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곧 LG전자가 해외 무대에서 새로운 사업 모델을 본격화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유럽에서 AI 가전 플랫폼을 론칭하고, 동남아를 중심으로 구독 서비스를 확대하며, 기후산업 박람회에서는 고효율 HVAC 기술을 공개하는 행보가 이를 방증한다. 여기에 해상운임 하락으로 물류비 부담이 줄어드는 흐름도 맞물리면서 하반기 수익성 개선 기대를 키우고 있다.

내달 유럽서 ‘씽큐 AI 플랫폼’ 첫 선
기존 원격 제어와 IoT 연결을 넘어, 고장 예방과 기능 업그레이드까지 지원하는 통합형 플랫폼으로 확장했다.
핵심은 ‘씽큐 업’과 ‘씽큐 케어’ 두 서비스다. 씽큐 업은 기존 가전에 새로운 AI 기능을 지속적으로 적용하는 서비스로, 지난 2022년 출시 이래 누적 다운로드 2000만 건을 돌파하며 한국·북미에서 성과를 냈다. 씽큐 케어는 고장·이상 징후를 진단해 제품 관리 편의성을 높였다.
유럽에서는 국가별 맞춤형 기능도 추가된다. 날씨가 더운 스페인에는 세탁물 냄새와 구김을 최소화하는 ‘프레시 키퍼’, 환경 문제에 관심이 높은 독일·프랑스에는 생활 패턴을 분석해 에너지를 절감하는 ‘AI 세이빙 모드’가 대표적이다.
LG전자는 현재 한국, 미국에서 제공 중인 씽큐 AI 플랫폼의 다양한 기능과 서비스를, 유럽을 시작으로 아시아, 중남미 등으로 순차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류재철 LG전자 HS사업본부장 사장은 "고객이 제품을 구매한 이후에도 불편함 없이 쓸 수 있도록 지속 업그레이드하고 관리하며, 끊임없이 진화하는 AI 가전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 중심으로 구독 서비스 확장
구독 서비스는 LG전자의 새로운 글로벌 성장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기적인 소모품 교체 및 점검, 전문적인 케어와 무상 AS를 제공하는 가전 구독 서비스가 해외에서도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이다.
LG전자는 최근 싱가포르에 첫 전용 브랜드숍을 열며 사업 확장에 속도를 냈다. 구독 사업을 운영 중인 말레이시아·태국·대만 등에서도 성과를 내고 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지난 5월에 월 구독 계정 수가 1만 건을 돌파했고, 태국은 서비스 시작 9개월 만에 누적 1만 계정을 달성한 데 이어 주요 도시에 서비스 홍보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대만에서는 초기 시장 단계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바탕으로 확산을 모색 중이다.
LG전자는 국내에서 정수기 구독을 시작으로 2022년부터 대형 프리미엄 가전으로 범위를 확대했다. 이 사업은 지난해 매출 2조원에 육박했으며 최근 5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30%를 웃돈다.
임정수 LG전자 HS/ES구독사업담당은 "현지 고객의 생활 패턴과 니즈를 파악하고 지역 특화된 제품 및 전략을 바탕으로 사업을 성장시키며 글로벌 구독 시장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후산업국제박람회서 고효율 HVAC 기술 공개
LG전자는 오는 29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리는 ‘기후산업국제박람회 2025’에 참가해 HVAC(냉난방공조) 기술력을 선보인다.
기후산업국제박람회는 산업통상자원부, 국제에너지기구(IEA), 세계은행(WB)이 공동 주관하는 글로벌 행사로, 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첨단 기술, 정책 해법 등을 논의한다.
부스에는 AI 엔진을 탑재한 ‘멀티브이 아이’, ‘휘센 AI 시스템에어컨’, 국내 40평형 제품 중 유일한 에너지효율 1등급 상업용 스탠드 에어컨 등 주거·상업·공공시설 맞춤형 솔루션을 전시한다.
아울러 건물 내 다양한 설비를 통합 관리하는 '빌딩 관리 솔루션'과 AI가 건물 내 온도와 전력 사용량을 실시간 분석해 자동 제어하는 '비컨' 시스템도 소개된다.
이재성 LG전자 ES사업본부장(부사장)은 "LG전자의 AI 기술과 핵심 부품 기술인 코어테크를 기반으로 고효율 HVAC 설루션을 지속 확대해 글로벌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해상운임 하락, 물류비 부담 완화 전망
글로벌 해상 운임 하락도 긍정적 변수다. 상하이 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올해 1월 고점 대비 40% 이상 떨어지며 11주 연속 내림세를 이어가고 있다.
LG전자는 2분기 콘퍼런스콜에서 "7월부터 전반적인 해상 운임이 하락하는 기조로, 기존 계약 선사와 신규 선사 혼합 사용을 통한 물류비 부담의 개선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LG전자가 지난해 지출한 물류비는 3조1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7% 늘어난 바 있다. 운임 하락세가 이어진다면 하반기 원가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