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 매거진

빙그레우스 왕국과 세대를 잇는 바나나맛 우유

[박재항의 캠페인 인사이트]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 광고 20년 세월

전통 기업 브랜드가 트렌디한 실행 방식과 어우러지다
'바나나맛 우유' 광고 모델 신유빈이 20년 전 광고 노래도 직접 불러

  • 기사입력 2024.09.30 08:00
  • 최종수정 2024.09.30 09:54
  • 기자명 박재항

더피알 = 박재항 | ‘훈련 중에 출출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바나나맛 우유가 하나 가득 쌓여 있네.‘

올해 파리올림픽을 계기로 ‘스포츠 스타 브랜드 평판 조사’에서 지난 몇 년 동안 굳건하게 1위를 지키던 손흥민 선수를 2위로 밀어낸 탁구의 신유빈 선수가 등장한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의 영상 광고가 9월 초에 공개되었다. 신유빈 선수가 직접 부른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흘렀다. 광고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에게 영상을 보여준 후 노래를 알고 있냐고 물었더니, 아는 이가 한 명도 없었다. 너무 놀란 표정을 보인 것 같았는지, 두세 명이 들어본 것 같다고 했다.

요즘 대학생들이 이 노래를 모르는 게 당연하기도 하다. 형제들로 구성된 남자 3인조 그룹으로 1970년대 말에 데뷔한 김창완이, 학생들의 부모 세대가 초중고를 다닐 때인 1983년에 발표한 ‘어머니와 고등어’가 원곡이니 말이다. 원래의 가사는 ‘한밤중에 목이 말라’로 시작해, 어머니께서 소금에 절인 고등어가 냉장고에 있는 걸 발견하는 설정이었다.

2004년생 신유빈이  2004년  당시 바나나맛우유 광고를 패러디하는 콘셉트 영상 캡처.
2004년생 신유빈이  2004년  당시 바나나맛우유 광고를 패러디하는 콘셉트 영상 캡처.

곡 출시 후 거의 20년이 지나, 지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태어난 즈음인 2004년에 김래원 배우가 출연한 바나나맛 우유 광고에서 ‘한밤중에 출출해서’란 가사로 바뀌어 불렸다. 그 광고에서 다시 20년이 지나 신유빈 선수에 맞춰 ‘훈련 중’으로 상황이 변했다.

바나나맛 우유의 주요 소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젊은 층에 생소한 노래가 광고의 주 테마를 장식할 때 문제는 없을까? 그러기에는 현재 신유빈 선수의 모델 파워가 워낙 강력해 상쇄될 수 있을 것 같다. ‘신유빈이 부른 노래’로 궁금증을 유발해 노래를 더욱 강력하게 각인하는 효과가 있는 듯하다.

바나나맛 우유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대놓고 얘기하지 못하고, 마시는 모습도 될 수 있는 한 감추려 하는 중장년층 ‘수줍은 애호가'(Shy Lover)들의 소비도 이끌어낼 수 있다.

세대를 연결하는 바나나맛 우유

광고 회사를 무대로 2023년 초에 방영된 16부작 드라마 '대행사'에 바나나맛 우유가 등장한다.

광고 회사에 부임한 그룹 회장의 딸이, 오너인 자기들과는 다른 계급으로 여기던 직원에게 모욕을 당한다. 어릴 때부터 바나나맛 우유를 빨대 꽂아 건네주던 다정다감한 아저씨였던 광고 회사 대표가, 자기 부하 직원의 행동에 대한 사과 겸 오너 딸을 위로할 겸 바나나맛 우유를 비서를 통해 보낸다.

그 우유에 꽂힌 빨대로 한숨에 들이켠 회장의 딸이 ‘이제 진짜 어른이 됐으니 빨대 꽂아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전하고, 그 말을 들은 사장은 회장 딸의 ‘진짜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구나’라며 혼잣말을 한다.

이렇게 바나나맛 우유는 세대를 잇는 가교가 된다. 이어 회장 딸은 항상 옆에서 보좌하던 비서가 자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떠난 후 바나나맛 우유를 들이켜며 앞에서는 차마 보일 수 없었던 눈물을 흘린다. 진정 홀로 서는 길에 들어선 상황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었다.

‘한국만은 아니나, 한국에서 두드러진’이란 제목으로 더피알 지면에 실었던 원고에서 보면 한국형 마케팅의 다섯 번째 특징으로 ‘Inconsistent Continuity'(일관되지는 않지만 지속)를 들었다.

바나나맛 우유로 대표되는 빙그레야말로 기업 차원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부터 과거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현대 첨단의 트렌디함을 융합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 실례를 빙그레 기업의 역사로부터 살펴보자.

투게더라는 브랜드와 대일유업

빙그레는 1967년 대일양행이라는 기업으로 시작해, 대일유업으로 기업명을 바꿨다. 미국의 퍼모스트매킨사와 기술 제휴를 하며 고급 아이스크림과 유제품의 길을 모색했지만, 자금난에 부닥쳐 1973년 한화그룹의 전신인 한국화약그룹에 인수되었다.

제휴사에서 가져온 퍼모스트를 상품군 브랜드로 쓰면서, 지금까지 빙그레의 성격을 규정지으며 기업을 대표해온 두 가지 상품을 1974년에 내놓았다. 첫째가 바로 바나나맛 우유이고, 둘째가 ‘투게더’라는 떠먹는 아이스크림이었다.

투게더는 가족이 함께 먹는다는 콘셉트로 한국에서 ‘우유를 원료로 한 고급 떠먹는 아이스크림’이라는 카테고리를 열었다. 해태나 롯데삼강에서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아이스크림을 앞다투어 내놓으며, 그들을 겨냥한 광고와 CM송이 주를 이루던 시절이었다.

당시 실제 나이보다 훨씬 무게감이 느껴졌던 송창식의 목소리에 ‘엄마 아빠도 함께’하는 아이스크림으로 차별화했다. 출시할 때의 가격이 600원이었다. 너무 단순한 비교이긴 하지만 25원이었던 시내버스비의 20배가 넘어, 지금으로 치면 한 통에 거의 3만 원꼴이었던 셈이다. 아무 때나 먹을 수 없고, ‘아빠 월급날’에 사서 먹는 아이스크림이란 카피가 와닿는다.

컬래버레이션과 왕국의 탄생

대일유업에서 ‘빙그레’라는 지금의 기업명으로 바뀐 게 1982년이다. 낱말 자체의 느낌은 밝고 가볍지만, 독립운동 지도자인 안창호 선생의 뜻을 이어받은 순수 한글 작명으로 역사성을 지닌다. 그에 더해 대표이사와 사주로 등장하는 김호연 회장은 임시정부 주석을 지낸 김구 선생의 손녀사위였다.

한국화약이라는 모그룹의 대표 기업은 유제품·아이스크림의 통통 튀는 소비재와 어울리지 않는 중화학·국가기간산업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겼다. 이런 전통적 성향이 강한 이미지가 다양한 SNS, 동영상, 컬래버레이션 활동을 통해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변화해왔다.

EBS 프로그램에 등장하여 세대를 초월한 국민 캐릭터로 뜬 펭수와 슈퍼스타 유재석이 변신하여 ‘부캐’ 열풍을 몰고 온 유산슬, 거기에 이 글 처음에 언급한 축구선수 손흥민을 제품 모델로 기용하며, 빙그레는 트렌드 물결의 앞자락에 배를 띄웠다.

이들 거물 광고 모델 이외에 '대왕 쥬시쿨(930ML) 급식 이벤트'와 '가수 크러쉬X엑설런트' 컬래버레이션 콘텐츠로 SNS에 화제를 몰고 왔다. 특히 2017년의 ‘스파오X빙그레 컬렉션’은 ‘쿨~라보레이션’이란 구호 아래 ‘메로나’, ‘비비빅’, ‘캔디바’, ‘쿠앤크’, ‘더위사냥’, ‘붕어싸만코’ 등의 빙그레 대표 아이스크림 제품들을 모티브로 한 의류를 선보였다.

어떤 제품을 티셔츠로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SNS를 통해 고객들이 의견을 내는 사전조사가 이루어졌다. 티셔츠가 출시된 이후에는 인증샷 이벤트로 아이스크림을 증정하며, 고객 참여가 이벤트 앞뒤로 이어졌다. 이후 고객 참여가 빙그레 마케팅의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움직임을 결집하면서 또한 각각에 힘을 주는 ‘따로 또 같이’에 방점을 찍은 사건이 2020년 2월 24일에 터졌다.

빙그레의 캠페인 영상 '빙그레 메2커를 위하여'  2023년 포스터. 사진=빙그레 제공
빙그레의 캠페인 영상 '빙그레 메2커를 위하여'  2023년 포스터. 사진=빙그레 제공

바나나맛 우유 용기 위에 우유가 튀는 작은 방울들을 연상케 하는 크라운관을 정수리에 쓰고 빙그레 로고의 ‘B’를 가져다 쓴 귀고리를 착용한 순정만화 왕자풍으로 생긴 인물이 빙그레 인스타그램에 등장했다.

셀카 형태로 찍은 사진을 올리고 ‘안녕?’이란 단 한마디만 남겼다. 이어 ‘이렇게 올리는 게 맞느냐?’란 물음이 이어졌다. 이 느닷없는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출현은 궁금증을 자아내며 열광하는 댓글을 끌어냈다.

캐릭터의 이름은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로 줄여서 ‘빙그레우스’이고, 6개월 내에 빙그레 인스타그램의 팔로어 수를 늘려야 아버지에게서 왕국을 물려받을 수 있다는 세계관 설명이 나왔다.

아무 광고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지 3주 만에 1만 7000명의 신민, 곧 팔로어를 모았다. 왜 등장했는지 설명이 나오기도 전에 신민을 자처한 이들의 댓글이 이어졌다. 단 한 장의 그림으로 빙그레우스 왕국은 SNS 세계에 강대한 세력을 형성하는 첫걸음을 성공적으로 내딛었다.

바나나맛 우유 왕관 이외에 빙그레의 각종 제품이 빙그레우스의 의상과 소품으로 선을 보였다.

왕홀(王笏)이라고 하는 지팡이에는 메로나와 꽃게랑 장식이 붙었다. 훈장 중 하나에 요플레가 쓰였고, 바지는 빵또아를 가져다 썼다. 이어 침실의 매트리스도 푹신함을 강조하며 빵또아가 쓰였다. 이후 빙그레우스는 펭수가 출연하는 싸만코 광고 현장을 찾아가 카메오처럼 뒤편에서 살짝 얼굴을 내밀어 사진이 찍히기도 했다.

제품 하나하나 빙그레우스가 소개하고, 비비빅 같은 경우는 ‘비비빅 군’이라는 힘센 시골 청년을 연상시키는 다른 캐릭터와 함께 등장했다. 소비자들이 빙그레라고 하면 바나나맛 우유만 연상해, 빙그레와 개별 제품 브랜드를 연결하는 고리로 빙그레우스가 탄생했다는 담당자의 의도가 제대로 적중했다.

빙그레우스는 인기 드라마처럼 시즌제로 운영되고 있다. 각 제품은 최초의 장식에서 비비빅 군처럼 캐릭터로 만들어져, 1인극에서 출발해 본격 드라마 모양새를 갖췄다. 그리고 왕위계승전, 악역과의 싸움, 왕립학교 운영 등 새로운 스토리가 가미되면서 현재 시즌 4까지 진행되고 있다.

기술이 가미되며 새롭게 조명되는 독립운동

SNS를 무대로 펼쳐지는 젊은 세대의 장난기에 맞추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역사극 형식을 띠었다는 데서 빙그레의 전통과 연결을 시도해봄 직하다.

실제로 빙그레는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기업 단위의 보훈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오고 있다. 외부에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은 2018년에 시작해 2019년 국가보훈부와 업무 협약을 맺어 진행하는 독립 유공자 후손을 대상으로 한 장학사업이 근간이었다.

장학사업이야 기업에 뿌리를 둔 많은 장학재단이 존재하니, 아주 특별하지는 않다. 빙그레는 여기에 젊은 세대의 흥미를 자극하며 그들의 영상 선호에 맞춰, 과거의 역사에 최신 기술을 입히며 트렌디함을 더해 접근했다.

과거를 새롭게 되살리는 빙그레 보훈 캠페인의 효시는 2019년의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영상이었다.

마침 투게더 아이스크림 출시 45주년까지 살짝 가미했다.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아이를 엄마, 아빠가 불러 가족 셋이 사진을 찍는다. ‘아빠 할아버지야?’라고 묻는 아이에게, 흑백 톤으로 바뀌는 화면과 함께 아버지가 ‘응, 아빠 할아버지야’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빛바랜 사진 속 따뜻함을 기억하듯, 우리는 당신들의 숭고함을 기억합니다’라는 자막과 함께 멘트가 나오고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흑백 사진이 화면에 나타난다. 잊히고 있는 독립지사들을 현재에 맞추어 새롭게 조명하며 되살려내겠다는 신호탄이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다니던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결국 졸업하지 못한 학생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징계 기록이 있는 222명 중 사진 자료가 있는 94명의 생전 사진을 AI 기술로 복원하여 졸업 앨범을 제작했다.

그분들을 대상으로 명예졸업식을 거행하고, 졸업생 대표는 홀로그램에 영상과 음성까지 곁들여 무대에서 졸업사를 낭독했다. 2023년 8월 광복절에 맞추어 공개된 영상과 자료는 합계 120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11월 3일 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이전 ‘학생의 날’)을 맞아서는 졸업 앨범까지 공개하고 여러 학교에 배포했으며, 백범기념관에서 전시회를 가졌다.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 광고
‘처음 입는 광복’ 캠페인 광고

AI, 디에이징 기술 등을 활용한 자료의 복원 작업은 좀 더 발전된 형태로 올해도 진행되었다. ‘처음 입는 광복’이라는 이름의 캠페인에서 87인의 독립운동가가 정갈한 한복 차림을 한 사진으로 나타났다.

광복의 ‘복’이 다시란 의미의 ‘복’(復)이지만 옷을 뜻하는 ‘복’(服)과 발음이 같은 것을 활용했다. 젊은 세대의 말장난 같은 형식을 차용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감옥에 갇힌 수인으로 입었던 수의 차림이 아니었다.

AI로 지사들의 모습을 복원하여 입힌 한복은 나라를 위한 희생 정신, 절개, 희망의 의미를 담은 색상으로 유명 한복 디자이너와 협력하여 제작했다. 한복으로 새롭게 차려 입은 87인이 기념 촬영을 한 영상까지 선보였다.

꾸준함과 새로움의 조화를 꾀해야

빙그레의 대표 상품으로 해외에서도 인기라는 '메로나'의 상표명과 디자인을 둘러싼 소송 결과가 9월 초에 들려왔다. 빙그레 측에서 모 회사에서 내놓은 멜론 베이스의 아이스바 상품의 이름과 포장 디자인에 모방과 표절 혐의가 있다고 소송했는데, 빙그레 원고 패소 판결이 나왔다. 과일 본연의 색은 독점할 수 없다는 논지였다.

‘초코파이’를 두고 벌어진 소송을 연상시킨다. ‘초코파이’는 일반명사로 봐야 한다는 결과와 비슷한 논지였다. 초코파이 소송에서 패소하기는 했지만, 꾸준한 마케팅으로 원고 회사는 원조로서의 이미지와 시장지배력을 더욱 강화했다.

신유빈과 함께한 '바나나맛 우유'는 추억을 소환하며 세대와 시간을 잇는 특별한 만남. 영상캡처.
신유빈과 함께한 '바나나맛 우유'는 추억을 소환하며 세대와 시간을 잇는 특별한 만남. 영상캡처.

빙그레는 2020년 해태 아이스크림 부문을 인수하면서 유제품 기반 빙과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전통의 힘을 간직한 기업 브랜드가 트렌디한 실행 방식과 어우러지면 원조이자 선도자로서 더욱 강력한 힘을 갖게 될 것이다. 바나나맛 우유 광고가 20년 세월을 두고 일관되면서도 새롭게 태어나 선보이듯이, 그렇게 노력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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