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병주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조선업 등 경제 협력 강화에 뜻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소, 선박 건조에 대해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눌 것"이라며 "미국은 조선업이 상당히 폐쇄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구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선박 구매 의지를 직접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한국과 협력을 통해 미국에서 선박이 다시 건조되길 바란다"며 "미국의 조선업을 한국과 협력해 부흥시키는 기회를 얻게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는 일부 선박은 한국에서 주문하고, 일부는 미국 내 투자를 통해 현지 건조를 추진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미국의 조선 능력과 관련해 한미 협력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산업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조선사들이 미국 조선업 및 해양 역량 강화와 미국 군함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 등에 적극 참여하게 돼 한미 양국이 윈윈할 수 있는 조선 협력 모멘텀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HD현대, ‘마스가’ 투자 프로그램 시동
HD현대는 한국산업은행, 서버러스 캐피탈과 함께 미국 조선업·해양 물류 인프라·첨단 해양 기술 강화를 위한 수십억 달러 규모 공동 투자펀드 조성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이번 사업은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미 조선업 협력 구상이 처음으로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HD현대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한미 조선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위한 MOU'를 맺었다. HD현대에서는 정기선 수석부회장이 참석했고, 서버러스 캐피탈에서는 프랭크 브루노 최고경영자, 한국산업은행에서는 김복규 수석부행장이 자리했다.
이번 투자 프로그램은 ▲미국 조선소 인수 및 현대화 ▲공급망 강화를 위한 기자재 업체 투자 ▲자율운항·AI 등 첨단 조선 기술 개발을 포함한다. HD현대는 앵커(anchor) 투자자이자 기술 자문사로 참여해, 투자처의 기술적 타당성과 경쟁력을 검증하고 성장 가능성을 평가하는 역할을 맡는다.
서버러스 캐피탈은 운용사로서 전략 수립과 관리 전반을 책임지고, 한국산업은행은 국내 투자자 참여 구조 설계와 자금 모집을 지원한다.
정기선 수석부회장은 "서버러스 캐피탈과의 협력이 동맹국인 미국의 조선업 재건을 목표로 하는 마스가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동시에, 한국 조선업계에도 새로운 시장과 성장 기회를 열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HD현대는 축적된 선박 건조 기술력과 디지털 역량을 바탕으로 미국 조선업의 현대화·첨단화를 지원하고, 양국이 함께 글로벌 조선산업의 새 장을 열어가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랭크 브루노 서버러스 캐피탈 최고경영자는 "이 프로그램은 투자뿐 아니라 운영·기술 역량을 결합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마스가에 대한 한국의 과감한 투자에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김복규 산업은행 수석부행장은 "HD현대와 서버러스가 함께 추진하는 이번 투자 프로그램은 조선업에서의 새로운 협력 모델"이라면서 "한·미 양국 간 깊은 신뢰와 파트너십을 보여주는 산물로 이번 프로그램의 성공적인 조성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HD현대는 이미 지난 4월 미국 헌팅턴 잉걸스와 방산 협력 MOU를, 6월 에디슨 슈에스트 오프쇼어와 상선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등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협력을 확대해왔다. 이달 초에는 미 해군 7함대 소속의 4만1천t급 보급함 ‘USNS 앨런 셰퍼드’ 정기 정비 사업도 수주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삼성중공업, 美 비거 마린과 MRO 협력
같은 날 삼성중공업과 미국 비거 마린 그룹은 미국 해군의 지원함 유지·보수·정비(MRO), 조선소 현대화 및 선박 공동 건조 등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 MOU를 맺었다.
비거 마린 그룹은 미 군함 유지보수와 특수임무용 선박 MRO 전문 조선사로, 오리건·워싱턴·캘리포니아·버지니아 등 4개 주에서 해군 인증 도크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첨단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를 기반으로 미 해군 및 해상수송사령부 MRO 사업에 본격 참여하며, 성과를 토대로 상선·특수선 공동 건조로 협력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기자재 클러스터와 조선 인력 트레이닝 센터 조성까지 협력 범위를 넓힌다는 구상이다.
최성안 삼성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MRO 조선사인 비거 마린 그룹과 협력하게 돼 매우 뜻 깊게 생각한다"며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 상선 및 지원함 건조까지 수행할 수 있는 기틀 마련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프란체스코 발렌테 비거 마린 그룹 대표이사 사장은 "삼성중공업과 파트너십을 통해 인도 태평양 지역에서 MRO사업의 역량을 확대하고, 미국 상선 건조 기회도 모색하겠다"며 "최고 수준의 품질로 미 해군력 강화에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美 조선업 부흥 위한 투 트랙 전략
이번 협력은 미국이 동맹국 조선소의 인프라를 활용하는 동시에, 현지 조선소 투자를 유도하는 투 트랙 전략으로 요약된다. 실제로 미국 의회에는 상선과 함정을 동맹국에서 건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된 바 있다.
미국은 숙련공 부족, 높은 인건비 등으로 인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현대식 조선소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특히 HD현대는 미국의 팔린티어와 손잡고 현대식 AI조선소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시장이 열리면 한국 조선업계에는 새로운 기회가 된다. 글로벌 발주량이 줄어드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상선 250척 건조 법안이 발의됐고 함정 시장 규모도 60조 원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중국과의 가격 경쟁을 치르는 한국 조선업체에는 안정적인 수요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호재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을 제외하면 한국이 사실상 유일한 미국의 선박 건조 파트너"라며 "마스가 프로젝트가 민간 기업 실적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사업 구조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