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피알=김병주 기자 | 산불에, 미세먼지에, 정치에, 구인구직난에,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이럴 때일수록 웃음이 필요하다는 오랜 지혜는 광고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상 시청이 가능한 수단이 늘어나면서 광고는 콘텐츠로서의 성격이 짙어졌고, 개별 광고는 소비자들을 더 단단히 붙잡아둘 호기심 요소들을 필요로 하게 됐다.
지난해 칸 라이언즈 국제 광고제에서는 유머 부문을 신설했다.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즈는 이를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위기를 맞은 광고 업계가 유머를 통해 AI에 맞서기로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대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인 스파이크스 아시아 2024의 최대 트렌드 4가지 중 하나로 유머가 꼽혔다는 사실은 이를 간접적으로 뒷받침한다.
유머는 쓴 약에 달달한 옷을 코팅한 당의정과 같아서, 평소라면 어렵게 느껴질 문제에 쉽게 접근하게 해주고,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메시지를 강력하게 드러내는 전략이 된다. 높은 주목도와 조회수를 거둘 수 있다는 부가적인 장점도 있다. 그렇다면 지난 2~3월 송출된 신규 TV CF 중에도 유머 코드를 전면에 내세워 주목받은 광고들로는 무엇이 있을까.
침대는 과학, 궤소리는 예술…에이스침대 ‘숙면 보존의 법칙’
중력가속도 대신 수면가속도, 작용 반작용의 법칙 대신 자용 잘자용 법칙, 표면장력 대신 표면잠력. 에이스침대가 내세우는 ‘숙면 보존의 법칙’ 3가지는 과학 수업시간에 들어봤을 현상과 법칙을 비틀어냈다. 비틀린 과학 상식을 잘 전달하려면 비틀린 센스의 전문가가 필요한 법, 은은한 이과의 광기로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가 3편의 광고에 모델로 등장했다.
과학을 전파한다는 공통분모 아래 궤도가 에이스침대의 모델로 처음 나선 것은 지난해 8월 27일이다. 지난해 배우 박보검을 연구원으로 내세웠던 ‘침대는 왜 과학일까’ 디지털 캠페인이 객관적인 비교실험을 통해 제품의 우수성을 증명하는데 집중했다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궤소리’가 돋보이는 3편의 신규 캠페인 영상은 브랜드 헤리티지 ‘침대=과학’이라는 명제를 친근하게 풀어내면서도 숙면의 새로운 관점까지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애드쿠아 인터렉티브가 제작대행을 맡아 지난 2월 28일 에이스침대 공식 유튜브 계정에 공개된 세 영상은 26일 기준 모두 400만회를 넘는 조회수를 거뒀다. 괴짜 과학자로 등장한 궤도는 연구실을 벗어나 실생활에서 침대의 성능을 확인하며 실험의 흥미를 더한다.
첫 번째 영상 '수면 가속도의 법칙'(416만회)은 매트리스 가장자리까지 지탱하는 일관된 지지력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궤도는 중력 가속도의 개념을 빌려 잠에 빠져드는 속도를 '수면 가속도'라 칭한다. 그리고 에이스침대만의 올인원 공법을 적용한 매트리스가 수면가속도를 높여줌을 보여주기 위해 다수의 실험맨을 2종류의 매트리스에 올려보낸다.
비올인원 매트리스 위 실험맨들은 가장자리 지지력이 약해 중심을 잘 잡지 못하지만, 올인원 매트리스 위에서는 여유롭게 음료를 즐기는 모습이 대조적으로 연출된다.
두 번째 영상 '자용 잘자용 법칙'(402만회) 역시 1편과 비슷한 구성이다. 에이스침대 매트리스 아래 달걀을 놓고 실험한 결과, 평균 몸무게 20kg인 어린이 실험맨들이 침대 위에서 1시간 동안 뛰어도 달걀은 깨지지 않는 모습이 연출된다.
3편 '표면잠력 현상'(418만회)은 쾌적한 수면 환경을 유지하는 에이스침대의 에어웨이 공법을 설명한다.
궤도의 실험에서 에어웨이 공법 스펀지는 밑에서부터 공기를 잘 통과시켜 솜사탕을 띄우지만, 일반 스펀지는 공기를 순환시키지 못해 솜사탕이 뜨지 않는다. 여기에 수면 시 습도 측정 결과 통기성으로 공기 순환이 원활한 에어웨이 매트리스의 수면환경이 훨씬 쾌적하다는 것을 수치로 입증한다.
광고에는 깨알 같은 ‘드립’ 요소들도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있다. 유튜버 침착맨의 방송을 통해 소위 지박령 퇴치 주문으로 유명해진 “지평좌표계 고정” 발언 외에도 잠제력(잠을 제대로 자는 능력)이나 잠율주행(자기도 모르게 잠드는 상태), 통기성·흡수성에 이은 잘잤성 등의 멘트는 광고 제작자들이 에이스침대에 누워 잠꼬대하는 소리를 그대로 옮겨왔나 싶을 정도의 센스를 보여준다.
에이스침대 관계자는 "2025년에도 첨단 침대 과학의 대표 주자로서 브랜드 헤리티지인 '침대=과학’ 메시지를 이어나가고자 한다”며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소비자와의 공감대를 높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지속적으로 시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약주 하셨어요, 후배님?” HK이노엔 ‘컨디션을 원해원’
바이오헬스기업 HK이노엔의 대표 제품 중 하나가 숙취해소제 ‘컨디션’이다. 음료, 스틱 등 다양한 형태로 20대부터 50대까지 전 세대에 걸친 스테디셀러로 팔리고 있는 컨디션은 OT, MT 등이 이어지는 대학 새학기 시즌인 지난 2월 27일 갓 스무 살이 된 새내기를 타깃으로 하는 신규 캠페인을 선보였다.
제일기획이 제작대행을 맡은 ‘본격 숙취해소 작전, 컨디션을 원해원’은 지난해 말부터 컨디션 모델을 맡고 있는 NMIXX(엔믹스) 오해원이 마케팅팀 신입사원으로, 배우 조한철이 부장으로 출연해 음주가 처음인 새내기들의 숙취해소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HK이노엔은 신규 광고 영상과 더불어 다양한 컨디션 라인업을 경험할 수 있는 댓글 이벤트와 대학교 별 특성을 살린 옥외광고도 선보였다.
‘스무 살의 첫 술자리는 컨디션과 함께’라는 카피를 내세운 본편(4분 14초)은 26일 기준 유튜브에서 88만회가 넘는 조회수를 거뒀고, 15초 광고 영상은 126만회, 쿠키 영상(37초)은 53만회를 거두는 등 다각적으로 주목받았다. 7편의 쇼츠 영상도 도합 159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본편에서는 2023년 국내 숙취해소제 카테고리 판매점유율 1위라는 닐슨아이큐 조사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부장님과 해원이 함께 새내기들을 대상으로 한 현장 홍보에 나서는 과정을 ‘병맛’을 곁들여 유쾌하게 풀어냈다. 특히 컨디션 굿즈를 소개하는 후반부에선 제품과 물아일체 된 조한철 배우의 열연이 돋보인다.
특히 지난해 6월 워크돌 승무원 편에서 해원이 “외모 체크!”를 외치는 영상클립이 유행을 탄 것에 착안해 ‘컨디션도 체크’하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것은 덤이다.
이노엔 H&B마케팅전략팀 담당자는 “음주 문화를 처음 접하는 소비층이 공감할 수 있는 유쾌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컨디션이 인생 첫 숙취해소제로서 즐거운 술자리에 함께하는 제품이 되길 바라며 이번 캠페인을 기획했다”며 “신규 광고와 연계한 온·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을 통해 중장기적인 충성고객으로 모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HK이노엔으로서는 ‘컨디션의 컨디션’을 지켜줘야 할 상황으로 보인다. 컨디션은 지난해 593억원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전년 대비 4.32% 감소한 수치다. 최근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제약사들이 숙취해소제 시장에 대거 진출하는 한편, 구매층이 한층 젊어지면서 복용 트렌드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박재범, 전소미, 박서준 등 인기 가수와 배우를 발탁해 2030세대 공략에 나섰던 HK이노엔의 행보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올해 1월 1일부터 ‘숙취해소’라는 단어 사용을 위한 식품의약품안전처 인체적용시험이 의무화되면서 당사도 지난해 인체적용시험을 완료했으며 오해원을 앰버서더로 한 디지털 필름을 송출하고 한정판 굿즈를 출시하는 등 MZ소비층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반기 중 컨디션 신제품 출시도 계획 중이다”면서 “제품 라인업을 지속 확대해 34년 간 1위를 지켜온 숙취해소 대표 브랜드 명성을 공고히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모공도 신앙도 구멍은 용납 불가’ 텔레토비와 함께하는 미샤
여기 소비자들의 믿음을 시험하는 화장품 브랜드가 출현했다. 에이블씨엔씨의 미샤(MISSHA)는 지난 2월 28일 브랜드 창립 25주년을 맞아 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텔레토비’ 캐릭터와 협업한 한정판 컬렉션을 출시하고 신규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 1997년 영국 BBC에서 방영을 시작한 텔레토비와 2000년 시작한 미샤 브랜드는 같은 Z세대에게는 레트로 감성의 ‘캐릭터 도파민’을,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추억을 선사하고 나섰다.
미샤는 고객 리뷰, X(구 트위터), 커뮤니티 등에서 '믿고 쓰는 미샤', '제품력 하면 미샤'라는 소비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영감을 받아 이번 협업 캠페인 슬로건을 '밋샤옵니다, 미샤'로 정했다. 자사의 제품력에 텔레토비 특유의 친숙하고 무해한 매력을 더해 브랜드 인지도를 강화했다.
한정판 컬렉션은 미샤의 대표 '6대 앰플'과 '모던' 아이메이크업 라인으로 구성되었으며, 구매 품목과 금액에 따라 텔레토비 키링, 동전 지갑, 장바구니, 텔레토비 4구 공용기 등을 한정판으로 증정한다. 일부 품목이 2월 24일 올리브영 온라인몰에서 먼저 출시되고, 26일부터 미샤 공식 온라인몰 에이블샵과 전국 미샤 오프라인 매장, 무신사, 지그재그, 에이블리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도 판매되기 시작했다.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세계관 마케팅과 색다른 모델 활용으로 유명한 카카오 계열사 ‘스튜디오좋’이 제작대행을 맡은 캠페인 영상 본편(1분 44초)은 한 달간 84만 회에 육박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유튜브에서 아동용 콘텐츠로 분류된 만큼 ‘꼬꼬마 친구’들에게도 상당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영상은 텔레토비들이 인간 세상에 미샤의 제품력을 전파하며 사람들의 강력한 신앙심을 이끌어내는 스토리를 담았다. 텔레토비 콜라보 제품을 주렁주렁 단 나무로 걸어가는 6명의 여성 모델들, 곧바로 화면 가득 채우며 시청자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듯한 붉은 ‘뽀’의 얼굴은 시작부터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이 시작된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특히 Young(젊은)적인 보랏빛 앰플의 성능을 못미더워 하는 고객의 믿음은 붉은 팥으로 쫀쫀하게 조여주고, 타는 듯한 나나의 후광에도 잡티 하나 생기지 않는 ‘비타(민)C~발라’ 앰플을 강조하는 대목에선 ‘내가 대체 뭘 본 걸까’ 싶은 잔잔한 광기가 여지없이 드러난다. 모델들의 연기가 절제되어 엉뚱한 유머 코드가 더 강조된다.
해당 캠페인 방영 시작 후 1주일 만에 미샤 공식 홈페이지에선 텔레토비 캐릭터가 그려진 앰플, 세럼, 섀도우 등 제품이 일제히 매출 10위권 안에 들었다. 에이블씨엔씨 마케팅 관계자는 “캐릭터 협업은 브랜드의 가치와 감성을 함께 경험하는 것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라며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동시에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조예서 에이블씨엔씨 브랜드전략부문장은 "미샤 25주년을 맞아 오랜 시간 고객들이 보내준 신뢰와 제품력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특별한 협업을 기획했다"며 "하반기 베이스 메이크업 등으로 텔레토비 한정판 라인업을 확대해 더 많은 소비자에게 즐겁고 차별화된 경험을 선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